bump/magazine

MUSICA 2023 8月号

8 7 2023. 10. 3. 04:26

▶수고하셨습니다. 저는 아레나 투어에 관해서는 2월 11일 아리아케 아레나에서의 첫날과 5월 28일 사이타마 슈퍼 아레나에서의 마지막 날을 보았습니다만, 멋진 라이브였어요. 일단 완주한 소감부터 부탁드려요.



마스(Dr): 끝나고 보니 눈 깜짝할 사이였고, 농밀하고 즐거운 시간은 보냈다고 생각합니다. 이번 일련의 라이브 스타트가 작년 7월 마쿠하리 멧세(2022년 7월 2일&3일) 'Silver Jubilee at Makuhari Messe' 라고 한다면, 목소리를 내지 못했던 곳에서 소리낼 수 있게되어 좋아지고 마스크 벗고 나아지는 데까지 오고 처음에는 (목소리 내기 금지 라이브에 대해) 위화감이 있던 것이 점점 익숙해지고는 있었지만, 이번 아레나 투어에서 손님들의 목소리를 듣고 역시 평범하게 목소리를 낸다는 것은 라이브를 하는 데 중요한 일이었구나 하고 ...굉장히 당연한 일입니다만, 새삼 실감이 났습니다.



▶ 2월 11일 이전 및 이후 즉, 소리내기 금지와 해금 이후의 라이브라는 것은 자신이 드럼대에 있을 때 느끼는 눈앞의 공기감 같은 것이 크게 바뀌었나요?



마스: 물론 소리를 내지 못해도 마음은 전해져 왔지만, 실제로 들리는 것이나 보이는 것의 정보량이 굉장히 크다는 것은 생각했습니다. 그건 하다 보니까 점점 그런 느낌인데,



▶이것도 코로나 사태가 영향을 미치고 있습니다만, 원래 투어로 전국을 돌아다니는 것 자체가 오랜만이었잖아요. 그곳을 향해 몸을 다시 단련한다든가, 여러가지 컨디션 조절은 있었나요?



마스: 하는 것 자체가 평소와 다르지는 않았지만요. 여러 가지를 잊고 있었구나 하는 부분은 있었어요. 가져가야 할 것을 가져가지 않았다던가(웃음). 치명적인 건 없는데.



▶ 하하하하. 그 옛날, 꽤 투어나 라이브 감각이 비었을 때 SHI BUYA-AX라는 라이브 하우스 분장실 장소를 잊어버렸다고 4명이서 말했었다는 게 생각났는데 그 정도 느낌?



마스: 그렇게까지는 아니라고 생각하지만(웃음). 그러고 보니 이 느낌이라는 것을 다시 생각하게 되는 순간은 많이 있었습니다. 비행기를 타는 것 자체도 오랜만이었고.



▶그렇구나, 확실히 그렇죠.



마스: 그런 것도 포함해서 즐거운 투어였네요



▶히로는?



히로(G): 평소와 조금 다른 것은, 지금까지는 투어가 끝나면 마음이 확 뜨는 느낌이 컸습니다만, 이번에는 좀 달라서. 물론 그런 감각도 있었고요. 정말 즐거웠던 투어라 끝나버려서 아쉽기도 하고 기분이 뜨기도 했지만 나이가 많아져서 그런지 끝나고 안도감이 너무 강해서.



▶무사히 완주할 수 있었다는 안도감



히로: 맞아요. 물론 투어 자체가 오랜만인 것도 있고 체력적으로도 꽤 아슬아슬한 느낌도 꽤 있었어요. 그것을 극복했다는 안도감이 컸던 게 스스로는 좀 의외였다고나 할까. 역시 신경을 많이 쓴 곳도 있더라고요. 누가 어떻게 되든 라이브를 못하게 되니까 저도 건강면에서 굉장히 신경을 많이 썼었고. 그런 걸 포함해서 좋은 투어로 마무리할 수 있어서 안심이 되는 부분이 이번에는 컸나.



▶반대로 말하면, 여기까지 세상의 공기에 대해 긴장감을 가지고 라이브하거나 생활하거나 하는 것은, 지금까지 없었으니까요.



히로: 맞아요. 사실 코로나19 사태 동안은 내 몸으로는 어떻게 할 수 없는 사태로 인해 라이브를 할 수 없게 되는 일도 있었던 셈이고.



▶ 그야말로 2022년 2월 25주년 기념일 라이브 'Silver Jubilee' 연기는 그것의 최고점이기도 했고요.



히로: 그렇습니다. 그런 것들을 포함해서 일단 전국에서 무사히 라이브를 할 수 있었다는 게 너무 기뻤어요.



▶후지는?



후지 (Vo&Gt): 지금 두 사람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여러 가지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작년 여름쯤부터 계속 의식이 라이브 모드였어요. 물론 그 사이에 제작도 많이 하고 있지만, 작년 7월의 마쿠하리 멧세부터  「be there」 라는 투어 파이널까지는 정해진 라이브 스케줄에 대해서 계속 그 스위치가 꺼지지 않은 느낌이 있어서 있었구나, 라고. 다시 생각해보니 그런 느낌이네요. 그렇다고는 해도 'be there' 라는 투어가 끝나자마자 타오르는 증후군처럼 된다든가 무거운 짐을 내려놓고 한숨 푹 돌릴 수 있게 되었다거나 하면 그건 아니고, 라이브랑 병행하던 제작활동이 있었거든요. 요점은 이번 투어 내내 곡 만들기를 했거든요. 그래서 투어 중에 곡이 완성되는 데까지 갔었는데 그 어레인지를 밴드로 하기 전 단계로서 우선 혼자서 하지 않으면 안 되고, 그 작업이 투어 끝나고 바로 있고. 그건 그거대로 뿌리내리지 않으면 안 됐었고, 집중력을 요하는 작업이었기 때문에 투어가 끝나고 한숨 돌릴 틈이 없었어요. (웃음). 지금은 이미 멤버들과 공유하고 작업하고 있지만 일단은 스스로 어레인지를 구축하지 않으면 멤버들과 공유할 수 없었어요. 그래서...그러니까 라이브 끝난 직후에, 그걸 먼저 했네요.



▶5월 28일 파이널이 끝나고 바로 그 작업에 들어갔다고.



후지: 그렇죠. 라이브 바로 뒤에 그런 일이 없다면 후우 하고 큰 숨을 쉬는 듯한 기분이 들었을지도 모르지만, 바로 그런 일이 있었으니까 그 기회를 놓친 느낌이 있어요. 그래서 별로 휴우~하지는 않았어 (웃음)



▶휴우~ 하지 않더라도, 라이브를 보고 있는 한 확실한 성취감 같은 게 굉장히 있지 않았나 싶은데요.



후지: 그것도~ 어떨까............ 이 투어를 끝냈어! 해냈어! 이런, 그런 큰 카테고리의 성취감은 없었나? 그래도 이 곡을 할 수 있어서 좋았다든가 그런 세세한 순간순간의 성취감은 굉장히 아~하고. 그건 각 공연, 자질구레하게 많이 있더라고요. 그러니까 큰 날 뭔가가 끝난것 같은 것은 아직 없지만, 순식간에 쭉 가지런히 있던 이 부분의 그루브가 갖추어졌다든가 그런 자그마한 성취감은 잔뜩 쌓였어요. 많이 얻을 수 있었던 기간이었던 것 같아요. 그렇다고는 해도, 작은 성취감이라고 하면서도 그게 내 안에서는 엄청나게 큰 것이기도 한데.



▶그렇지.



후지: 다만,  鹿野さん이 물어봐주신 것과 같은 류의 큰 감회같은것은 내 안에서는 별로 없을지도 몰라요.



▶지금 이야기 한 것은 즉, 하나하나, 한 곡 한 곡, 한 마디 한 구절을 모두 정성스럽게 전달하러 가는 투어였다는 생각이 들었는데, 그런 느낌에 가까운?



후지: 그건 옛날부터 그랬지만 단지, 어쩌면 보다 강하게 의식하고 하고 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한동안 라이브를 할 수 없는 시기가 있었고 손님을 만날 수 없는 시기가 있었기 때문에. 저희뿐만 아니라 그런 밴드는 적지 않은 것 같은데요. 역시 2020년쯤부터 그런 느낌이었잖아요.



▶ 2020년 2월 26일 행사 자제 요청이 나온 이후 그런 시기가 계속 이어지고 있었죠.



후지: 그중에서 답답한 마음을 안고 있던 뮤지션이 적지 않다고 생각하고, 저희도 그랬는데. 그런, 하고 싶어도 라이브가 안 된 시기를 거쳐서야 겨우 할 수 있었던 라이브였기 때문에. 게다가 겨우 할 수 있었다는 것 속에서도 여러 단계가 있고. ....처음으로 우리한테 ‘유관객 라이브' 라는 새로운 말이 붙었잖아요.



▶그렇지.



후지: ''유관객 라이브'' 라는 말이 대단한 거야. 20년 넘게 이 밴드에서 음악 활동을 해왔는데도 처음 만나는 말이었어요.



▶무관객 라이브라는 말이 태어났기 때문에 생겨난 말이니까요.



후지: '유관객 라이브' 라든가 '소리 내기 금지' 이런 특수한 상황이 계속 이어졌으니까. 물론 그래도 라이브를 할 수 있는 것 만으로, 당신을 만날 수 있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뻤는데. 그런 와중에 지금까지 자신이 라이브에 있어서 소중히 여겼던 것이라든가, 라이브에게 요구하고 있던 것이라든가, 라이브에서 느끼고 있던 것이라든가 그 종류나 의미는 변하지 않았어요. 그런데 그런 것들을 좀 더 강하게 더 깊은 의미를 가지고 느낄 수 있고 그런 기간이었던 것 같아요.



▶마지막으로 챠마, 어때요?



나오이 요시후미(챠마),(Ba): 투어를 완주하고 생각한 것은 그 어느 때보다 청취자 여러분과 스태프와 멤버들과 관여해 준 사람에 대한 감사가 깊고 컸네요. 요 몇 년인가, 다들 다 똑같이 힘들었을 거예요. 아이들은 학교에 가지 못하거나 행사가 사라지거나 해서 추억을 쌓지 못했던 것 같고 어른들은 일이 없어진 사람도 많았을 테고요. 그런 와중에 다들 다가서면서 이룬 라이브였던 것 같아서요. 그리고 라이브 제작진과는 정말 오랜만에 만난 사람들이 많았고 멤버들과 투어를 다닐 수 있다는 것 자체도 정말 오랜만이니까. 투어하는 곳에서 멤버들과 함께 밥을 먹기도 했는데 그렇게 멤버들과 함께 밥을 먹는 것도 코로나 때문에 그만뒀던 일이었고. 물론 손님과도 만날 수 있었다는 것도 정말 오랜만이고. 그런 거 다 포함해서 끝나고 나니까 되게 감사한 마음이 있었어요. 여러분들 덕분에 투어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은 분명 4명 모두 똑같이 생각하지만, 투어가 끝난 후에는 일단 관여해주신 모든 분들께 감사의 말씀을 드리고 싶다는 마음이 되게 많았어요. 아까도 말했듯이 지난 몇 년 동안은 다들 뭔가 힘들었던 느낌이라고 생각하거든요. 당연히 저보다 더 힘든 상황에서 열심히 했던 사람들도 많고. 그런 와중에 라이브를 하게 됐고, 모두가 저 무대를 지켜줬어요. 사실은 후지와라군이 이번 투어의 MC로 확실히 전해줬다고 생각합니다만, 저도 완전히 그렇게 생각하고... 투어는 역시, 모두가 지켜주었기 때문에 저희가 거기 가서 라이브를 할 수 있었던 거죠. 그건 스태프분들, 청취자 여러분, 관계자 여러분의 모든 힘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그게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감정이에요. 물론 지금까지도 언제나 감사하긴 했지만, 그래도 지금까지와는 전혀 다른 감정이었어요.



▶고마워요. 사실 어제 이렇게 4명 다 인터뷰한 게 언제쯤인가 싶어서 회사에서 백넘버를 뒤집어서 알아봤는데, 무려 5년 전이라는 게 밝혀졌고.



후지: 5년 전!?



▶네. 'PATHFINDER'가 끝난 직후 인터뷰. 그 이후로는 후지랑은 인터뷰를 하고 있는데 4명 전부와는 안 해서.



나오이: 하지만, 그런 말을 듣고 보니 확실히, 라이브 하우스 같은 데서 라이브도 5년 만인 게 많았지.



마스: 그렇지. 그야말로 'PATHFINDER' 이래.



나오이: 아레나 투어도 이 공연장은 5년 만인게 많이 있었고.



▶그렇죠. 무슨 말을 하고 싶었냐면 이렇게 4명이랑 얘기하는 게 그 정도로 오랜만이라는 것도 포함해서 작년 여름 이후 라이브 전체를 정성스럽게 풀어나가도록 하겠습니다. 우선 당초 예정이라면 2022년 2월 10일, 11일이라는 밴드에게 매우 중요한 결성기념일에 결성 25주년 라이브를 하기로 한 것이 연기되어 결과적으로 7월 2일, 3일 마쿠하리 멧세의 'Silver Jubilee' 을 개최했습니다.  현실적으로 그 라이브가 여기에 이르기까지의 여행의 시작도 되고 있다고 생각합니다만, 일단 연기가 됐을 때 어떻게 생각했는지 게다가 이 결성 기념 라이브를 자신들의 큰 홈으로서 마쿠하리 멧세에서 했을 때 어떻게 생각했는지 알려주세요.



나오이: 원래, 2022년의 2월 10일을 향해서 라이브의 리허설을 하고 있어서요. 그래서 그 큰 리허설 첫날에 (당시 감염 확대 상황을 감안해서) 연기할 수밖에 없다는 얘기가 됐거든요. 그날 라이브 스태프들도 오랜만에 만나고 정말 반가웠군요. 애들이랑 '오랜만이야. 잘 지냈어? 이런 식으로 얘기해서 좋아, 그러면 연습 시작할까 하는데 제작진으로 부터 "이번에는 안전을 생각해서 한 번 더 연기하는 편이 좋을 것 같아요“ 라는 이야기가 있어서...하지만, 그 자리에 저희 4명은 물론이고 라이브 스태프의 중심적인 분들이 다 계셔서. 그 전원이 있을 때 그런 결론이 나고. 그거 참, 어쩔 수 없는 일이긴 하잖아요. 누가 잘못한 것도 아니고 당시 상황을 생각하면 그럴 수밖에 없다. 그게 제일 좋지 이런 얘기인 거고. 다만, 이게 만약에 저 혼자의 상황에서 연기라는 얘기를 들었다면 고민이 됐을 텐데요. 그때는 다 있었으니까. 그러니까 다 같이 어쩔 수 없이 다시 할 수 있는 날까지 힘내자. 이런 식으로 해산하고



▶모두와 함께 그 결단을 내릴 수 있었기 때문에, 긍정적인 마음으로 파악할 수 있었다고.



나오이: 네. 그래서 그 날은 연습을 안하고 그냥 돌아왔는데요.



후지: 맞다. 리허설 첫날 들었거든.



마스: 그래. 큰 스튜디오에서 며칠 리허설 하는 첫날에, 그런 얘기가 된 거지. 그 단계에서는 연기를 결정한 것은 좋지만 아직 다음에 언제 할 수 있느냐는 것까지는 정해지지 않았어요.



나오이: 하지만 전의 상황보다 나아지기는 했고, 멤버들이 만나서 리허설 하는 것 자체는 전혀 문제가 없는 시기이긴 했으니까. 그래서 그 기간 리허설을 할 수 있었던 것도 기뻤고요.



▶요컨대 2월 10일을 향한 것은 1회 끝났지만, 대체 공연을 향해 어떻게 보면 콘스탄트하게 움직일 수 있었네요.



나오이: 그렇습니다. 물론 연기가 되어버린 것은 분했지만 그런데 그런 생각을 해도 어쩔 수 없고, 또 (대체 공연이) 되게끔 제작진분이 해주셨으니까. 그곳을 향해 네 사람 모두 의욕이 있었고 거기서 더 좋은 연주를 하길 바라는 마음이 네 명 다 있었어요.  그래서 스튜디오에 들어가서 리허설을 할 수 있었던 것은 정말 다행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런 다음에 7월에 무대를 세우시고. 그때는 목소리를 못 냈는데 나오기 전 박수부터 치고 이제 청취자 여러분의 마음이 깊이 전해지는 맞이 방법이었기 때문에. 라이브 중에도 목소리를 낼 수 없는 것은 신경 쓰이지 않을 정도로 편안하게 했습니다. 저도 코로나 때문에 많은 아티스트 라이브를 가게 되었는데 (규제하의 라이브도) 꼭 나쁜 것만은 아니에요. 다행인 것도 있고. 저는 평소에는 라이브로 소리를 지르고 같이 불러버리는 타입인데요. 아무도 소리를 내지 않기 때문에 정말 차분히 연주를 들을 수 있었고, 손님 간의 거리를 둔 지정석이라는 것도 퍼스널 스페이스가 존재하는 가운데 그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그런 식으로 아티스트와 일대일로 될 수 있는 어떻게 보면 되게 사치스러운 시간이었던 것 같아서. 딱히 그걸 긍정하는 건 아니지만 다만 힘든 와중에도 음악의 자유로움이나 즐거움이라는 게 결코 사라지지 않는구나라는 걸 다시 느낄 수 있었던 거죠. 그렇기 때문에 제가 라이브하는 것으로 나쁜 것만 있는 게 아니라 그런 부분도 손님과 공유할 수 있으면 좋겠다는 마음이 있어서... 그런 마음으로 막장 무대에 임했는데 사실 손님들은 그 이상의 반응으로 저희를 반겨줬고 라이브를 즐겨주시고 끝난 후에도 즐거웠다는 말을 많이 해 주셔서요. 그래서 정말 할 수 있어서 좋았고 하길 잘했다는 시작이었어요.



▶후지는 어땠어요?



후지: 챠마의 이야기를 듣고 연기하기로 결정되었을 때의 상황이 기억났는데, 바로 2월 10일, 11일 투 데이즈를 향해서 리허설을 하고 있을 때였어요. 그래서 연기이야기를 들었을때는....솔직히, 저는 그럴 가능성도 충분히 있을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역시 당시는 그런 세상이었잖아요.



▶네.



후지: 그러니까 '그렇구나...' 라고 받아들인 느낌이긴 했지만, 그냥 제일 생각한 건 역시 저희 라이브를 기대해주신 분들을 생각하는 거죠. 당연히 여러가지 마음이 있었지만 그 사람들을 향한 마음이 제 안에서는 제일 컸어요. 라이브를 기대해주고 있었다는 사람 한 사람 한 사람을 상상해버렸고...연기가 발표되어서, 그걸 받은 사람의 마음은 어떤 말을 할 수 없을 정도로 그 사람 각자의 마음이 있을 거라고 생각하거든요. 그런 건 어떻고 근데 생각이 들더라고요. 역시 리스너가 있는 라이브, 손님이 있어줘야 하는 라이브니까. 그 사람들의 기분을 생각하면 마음이 벅차올라져서. 그래서 주눅들거나 욱하는 그런 일은 전혀 없었고. 라이브를 할 수 없다면 지금 저희가 해야 할 일은 이거라고 생각하고 제작에 임해 갔네요. 그렇게 자기가 하고 있는 일의 의미가 그 어느 때보다 명확해진 부분은 굉장히 많고.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서 라이브를 하는구나 했는데 그것은 음악 활동에 관련된 모든 것에 대해 말할 수 있는 것입니다. 제작을 할 때는 여러 번 볼 수 있는 마이크. 내 목소리를 담을 때도 내 얼굴 앞에 마이크가 놓여 있고 기타를 칠 때도 어쿠스틱이라면 사운드 홀 앞에 놓여있고 일렉트릭이면 앰프 앞에 놓여 있고.물론 챠마의 베이스 앞에도 놓여있고 히데 주변에는 마이크가 여러 개 놓여 있는데 그 마이크의 의미를 굉장히 많이 생각했어요. 요점은, 이 마이크 건너편에 들어주는 사람의 귀가 있어요. 그런 이미지가 그 어느 때보다 강하게 내 안에 있어서. 그런 이미지를 가져야 한다 이런 게 아니라 필연적으로 그러한 이미지가 강하게 일어선다고나 할까...물론, 옛날부터 그런 이론이랄까, 그런 마음으로 저는 하고 있고 그 감각이 배어 있는데 근데 아까 얘기했던 거랑 똑같은 이유로 들어주는 사람의 존재를 그 어느 때보다 의식하게 되었어요. 원래 거기에 대한 의식은 강한 편이었을텐데



▶그렇습니다.



후지: 그런 자신의 커리어 중에서도, 더 강하게 들어줄 사람을 생각하면서 제작을 계속해 나갔네요. 그래서 라이브에 관해서는 7월에 할 수 있다고 해서 그날이 다가와서 큰 스튜디오를 빌렸던 리허설이 다시 재개되어서...... 그래도 뭔가, 다시 칸막이 같은 기분은 별로 들지 않았어요.

그렇게 생각하면 아까 7월달부터 계속 라이브모드였다고 했는데 저 개인적으로는 어쩌면 2월 정도부터 계속 그랬을 수도 있어요. 밴드 전체의 공기감으로서도 제가 봤을 때 그랬던 것 같아요. 계속해서 들어주는 사람 앞에 서서 연주하는 것의 의미 같은 걸 네 명 중에서 그 어느 때보다 크게 느꼈던 것 같은 분위기는 있었던 것 같은데.



마스: 응, 그랬어



후지: 그래서 7월 2일과 3일을 맞이했고………역시 기뻤어요: 이 때문에 이런 것들을 다시 한번 실감했다고 해야 되나? 손님들은 다들 소리를 못 내니까 박수로 맞아주는 거죠. 그 박수가 정말 굉장해서... 소리를 낼 수 없다는 룰을 분명 그들은 답답하게 생각하고 있을텐데, 하지만, 그런 것으로 듣는 쪽의 저도 녹초가 되면 안 되니까, 소리를 못 내는 대신 박수로 모두를 맞아주려고 했던 걸까요? 물론 쉽게 말할 수는 없지만, 그런 손님 한 분 한 분의 열정 같은 추억의 덩어리 같은 것을 그 박수에서 엄청 느꼈다고 해야 되나? 박수를 통해 그런 걸 받으면 그리워 진다 해야하나, 뭐랄까. 그래서 그것은 자신에게 특별한 것이 아니라, 신기하게도 아주 그리운 울림이었어요.



▶그건 무엇인가요?



후지: 박수만으로 맞이할 수 있다는 것은 처음 있는 일이잖아요. 그런데도 ‘맞아, 나는 이걸 계속 들어 왔지.’ 라는 그런 그리운 느낌이 들었어요. 그게 이상한 얘기인데. 왜냐하면 지금까지 라이브가 시작될 때에 관한 건 목소리와 박수가 섞인 거였거든요. 근데 이번에는 박수만 쳤는데 하지만, 게다가 굉장한 그리움을 기억하고......돌아왔다는 기분이라든가 되돌아간 기분이라든가, 여러 가지 마음이 솟아오르고. 그건 전부, 손님한테 받은 거죠. "그래 그래, 이런거야! 고마워! 이 날을 위해서 사는 거야, 이 순간을 위해 오고 있는 거야.‘ 이런. 그런 마음으로 가슴이 벅찼어요. 라이브가 끝난 후에 소리 내기 금지라서 하기 힘들었을 거 아니야? 이런 말을 주변에서 듣곤 했는데, 힘든 건 진짜 일절 없었어요. 굉장히 즐겁고 너무 기쁘고 너무 소중하고. 손님들이 다 부딪혀주시고 이쪽도 다 부딪히고 그걸 잘 받아주고. 뭐랄까....원래 목소리가 울려퍼져야 할 곳에 그 목소리가 없는 상태였습니다만, 그 틈을 다 같이 포지티브하게 느끼는 것 같아서. 지금까지의 라이브라면 여기서 손님들이 불러주고 있었어 라는 부분에 관해서는 아무도 노래하지 않는 상태에서 오직 우리들의 연주만으로 되어 있는 형태였는데요. 그 공간을 다 같이 느끼고 있는 거기에 울리지 않았을 소리가 들린다고나 할까...이상론도 예쁜것도 아니고, 그런 라이브였어요. 7월 2일, 3일은. 그래서 그다음 라이브 하우스 투어도 정말 그런 라이브를 매번 하게 되고. 그래서 너무 행복한 투어였어요. 그런 마음이었어요.



▶히로는 어때요?



히로: 2월의 라이브가 연기되어 버렸다고는 하지만, 아까 후지군이 말했듯이, 정말 거기서부터 계속 라이브 감각이 이어지고 있어서. 솔직히 2월에 취소된 시점에서는 7월이라는 날짜도 아직 나오지 않았고 저는 막연한 불안감이 아무래도 있었거든요. 물론 만나고 싶었던 사람에게 만날 수 없다는 외로움도 있었고. 다만 2월에 라이브 하기로 했던 그날 '천체관측' 리레코딩 같은 걸 했거든요.



후지: 아, 그때였나?



마스: 응, 그때. 라이브하기로 했던 바로 그날 천체관측 리레코딩을 했잖아. 그래서 그걸 인스타에 올린 것 같아.



후지: 그렇구나, 그때인가?



히로: 그렇게 눈앞에 제작해야 할 것들이 많았기 때문에 모두 자연스럽게 마음을 담아 제작 활동을 할 수 있었어요. 그렇다고는 해도 일정이 잡히기 전까지는 불안감은 계속 있었던 것 같네요. 2월이 중지된 이후로 일정이 나오지 않은 가운데서도 라이브를 향한 여러가지 일들을 계속 유지한다는 것은 경력 중 첫 경험이었기 때문에.



▶사실은 목적지가 보이지 않는 가운데서도 언제 라이브를 할 수 있게 되어도 좋아. 처럼 라이브에 대한 마음을 다하지 않고, 컨디션도 계속 잡고 있었으면 좋았을 테니까.



히로: 맞아요. 그래서 드디어 7월 2일, 3일이라는 일정이 잡혀서 할 수 있게 된 당일은 역시 감동했어요. 아까 후지와라군도 말했지만, 실전 직전에 무대에서 반주가 흘러나오기 시작했을 때의 그 박수 그 느낌은 저도 너무 기억이 나서. 오랜만이다 이 느낌 이런. 돌아온 느낌이랄까. 그래서 감동을 받았던 게 7월 라이브의 첫 기억이죠.



▶마스는?



마스: 역시 저도 지금 모두가 이야기한 것과 같은 기분입니다만, 한가지 모두가 말하지 않은 것을 꼽는다면, 원래 'Silver Jubilee' 라는 건 어떤 라이브였냐면 2021년에 결성 25주년 기념으로 하려고 했던 라이브예요. 그런데 당시 상황적으로 그때는 안 됐고, 그럼 26주년 때 하자! 가 되었는데 그것 또한 할 수 없어서 결과 2022년 7월이 되었다는 흐름이었기 때문에 단순히 라이브를 할 수 있어서 기쁘다, 손님을 앞에 연주해서 기쁘다는 것에 더해



히로: 확실히!



마스: 'Silver Jubilee' 할 수 있어서 다행이라는 위안감도 하나 있고.



마스: 말해 보자면, 생일파티를 계속 미루는 느낌이었는데 드디어 손님과 함께 축하할 수 있었구나. 그런 게 이래저래 중요한 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우리는 20년차에 처음으로 (결성 기념 라이브) 했을 정도로 거기에 관한 의식은 계속 희박했는데 20주년을 했을 때 저희가 생각했던 것보다 손님들이 좋아해주셔서 이런 게 역시 중요하다는 걸 실감했거든요. 계속 올 수 있었던 것도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서였고, 우리 일인데 이렇게 좋아해주는구나 하는 감동도 있었고. 그 축하를 계속 미루고 있었는데 마침내 2022년 7월에 달성할 수 있었던 것은 단순히 기쁘고 안심이 되네요.



▶에서, 마쿠하리를 마치고 9월에는 "SOUVENIR"이 배포 발매되면서, 2022년 10월 24일부터 「Silver Jubilee」 의 라이브 하우스 투어가 시작되었습니다. 말해보면 자신들의 25주년 생일잔치를 전국에 나가서 열어가는 그런 부분도 있었던 것 같은데요. 특히 라이브 하우스라는 손님들과 현실적으로 거리가 매우 가까운 공연장에서의 라이브이기 때문에 뭔가 심경의 변화가 있거나 얻은 감각 같은 것이 있으면 가르쳐 주세요.



마스: 라이브 하우스 자체가 몇년만이라고 하는 ······아, 하지만 「aurora ark」 때 하고 있으니까 그렇게 비어 있지 않은가.



▶그래도 3년만이지 않을까.



마스: 그렇구나. 분명히 후지군도 MC에서 말했던 것 같은데, 기분의 가까움은 아레나에서도 라이브 하우스에서도 다르지 않지만, 그냥 역시, 물리적으로 거리가 가깝다는 것은 하는 쪽으로서는 임팩트가 있구나(웃음).



▶그렇군요, 그렇지



마스: 그만큼 가까우면 마스크를 쓰고 있어도 어떻게 생겼는지가 세밀해 보이고, 뭐랄까...체감이 있어요. 자기들이 이렇게 하면 이런 반응이 있다는 그 반응 속도감도 굉장히 빠르게 느껴지고. 물론 마쿠하리에서도 같은 것을 느꼈겠지만, 이 타이밍에 물리적으로 가까운 거리에서 마주하는 라이브 하우스에서 투어를 할 수 있었다는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뭔가, 라이브라는 것은 서로 충돌한다는 걸 새삼 느꼈다고 해야 되나? 눈앞에 사람이 있고 우리가 소리를 내면 반응해준다는 단순한 점에서 이만큼 감동받을 수 있어 라는 걸 굉장히 실감할 수 있었던 12회였죠.



▶「Silver Jubilee」 의 라이브 하우스 투어는 10월 24일부터 12월 13일까지 6회장 12공연이 열렸는데, 이 투어의 세트리스트는 25년이라는 것을 생각하면서 만들어 간 부분이 강했나요?



후지: 사고방식으로서는, '20' 때랑 똑같죠.



히로: 그렇지



후지: 각각 자신이 하고 싶은 곡을 넣어 가면서, 최근 곡도 어느 정도 섞어 간다고는 하지만 전부 한다는 것도 아니고, 이런 식으로 짜낸 형태일까.



히로: 그래도, 가급적이면 치우치지 않도록 생각하고 있었고



후지: 맞아



▶ 이것은 'be there' 까지 포함해서 이번 일련의 라이브를 보고 난 인상입니다만, 굉장히 옛날부터 라이브를 보는 사람 입장에서는 세트리스트가 정말 바뀌었다고 생각했거든요. 물론 여러 시기의 곡들이 들어있는 건 알지만 신곡이 가장 큰 주역이 되고 있어요. 그건 제 인상으로는 「PATHFINDER」 의 투어까지와는 울림이 달라졌다는 것을 굉장히 느꼈거든요. 그런 의미에서 BUMP OF CHICKEN이 25년차라는 것을 강하게 느꼈습니다.



후지: 그것 참 기쁘군요



히로: 응



나오이: 감사합니다



▶별로 의식한 것은 아니었나요?



나오이: 4명이서 이야기하고 있던 것은, 새로운 곡에 관해서는 '처음 뵙겠습니다' 이런 마음으로. 물론 CD나 송신에서는 내고 있습니다만, 제대로 직접 전달하고 싶다, 새로운 악곡들을 청취자 여러분들과 공유하고 싶은 마음이 강했던 것은 있어요. 그런데 그건 늘 하는 일이고. 옛날부터 신곡 나오면 그거 라이브로 하자는 스탠스이긴 했으니까. 그러니까, 신곡들을 주역으로 두고 싶은 마음은 없었어요.



▶그것을 의도한 것은 아니었다고.



나오이: 네. 신곡에 관해서는 그냥 순수하게 들어주셨으면 하는 마음이 네 명 다 굉장히 강했던 것 같아요. 그래서 정말 네 명 다 좋아하는 곡이랄까 지금 하고 싶은 곡을 골라갔다는 느낌. 다만 그 곡이 너무 치우쳐버리면 뭔가 의도가 생겨날 수 있기 때문에 그것으로 인해 손님을 혼란스럽게 하는 것은 싫다는 이야기는 있었어요. 그렇다고 애당초 네 사람이 고른 곡이 편중되지도 않았고.



마스: 응, 그렇지.



나오이: 그러니까 조금만 밸런스 같은 것을 수정하면서, 그 세트리스트가 되어 갔다는 느낌이었어요.



▶확실히 마쿠하리 때는, 첫 등장 SE에서 "A Quick One While He's Away"를 틀었지요. (BUMP OF CHICKEN이 옛날부터 라이브 등장 SE로 틀어놓고 있다, The Who의 악곡)



후지: 응, 틀었죠.



▶역시 말이야, 그 곡이 울리고 그리고 라이브가 시작되면 그것만으로 한 구역에 들어가는 느낌이 있는 거죠. 게다가 요즘 곡들이 주역으로 들린다는 건 정말 지금의 이 밴드가 들려주고 있는 라이브였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후지: 고마워요. 단지, 잘 알고 있겠지만, 우리들은 그런것을 의식해서 하려고 해도 아마 무리한 밴드일거야(웃음). 그러니까 지금 하고 싶은 것을 한 결과 그렇게 느낄 수 있는 라이브가 되었다면 그거 참 잘된 것 같아요.



▶그 라이브 하우스 투어는 오랜만에 전국을 도는 여행이었지만, 그렇다고 세상의 긴장감은 아직 계속되고, 꽤나 짜릿한 여행 그래도 이상하진 않았을 거예요. 실제로는 어땠나요?



나오이: 짜릿한 느낌은 4명 모두 없었다고 말해도 좋을 정도일지도 몰라요. 그건 왜 그러냐면, 이제 4명 다 여러가지 경험했기 때문에 무엇이 있을까 해도 놀라지 않는다고나 할까, 그렇지 이런 생각을 하게 됐다고 해야 되나? 플러스로 스태프분들이 너무 신경을 많이 써주시니까.저희가 불안감을 갖지 않고 투어를 돌 수 있도록 스태프분들이 준비해주셨기 때문에 네 분 다 그 안도감도 있지 않았을까. 그래서 연주할 수 있는 기쁨에 포커스가 생겼다고나 할까. 아까 후지군이 말했던 것처럼 박수밖에 없다고 해서 하기 힘들었던 것도 전혀 없었고. 그래서 라이브 하우스 투어 중에는 긴장감이나 불안감 같은 건 다들 없어진 것 같아요.



▶사랑스러우셨나요?



후지: 네, 매우. 어떻게 하면 갚을 수 있을까? 정도의 답답함이 있었습니다.  박수를 다 타고있구나.  (乗ってるんだ) 환영의 마음도, 들떠 있구나 하는 마음도, 정말이라면 함께 부르고 싶다는 마음도 전부 이 사람은 박수에 타주고 있구나라는 게 너무 전해져 와서. 투어 중에 어디서 듣는 박수도 그런 박수뿐이었거든요. 그것에 대해서 어떻게 하면 제대로 갚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굉장히 많았어요. 저는 'supernova'라는 곡에서 ‘진짜 고마움은 고맙다는 걸로는 부족해‘ 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만, 바로 그것에 가까워요. 진짜 제가 갖고 있는 카드로는 부족해서. 그런 기쁜 답답함이랄까, 그런 거 되게 많이 느꼈어요.



▶이 밴드의 라이브는, 옛날부터 플로어가 굉장히 일편단심이었다고 생각합니다. 그 일편단심 때문에 메이저 데뷔 전에는 시모키타자와에서 최전방 울타리가 부서지거나 아레나에서도 일편단심 때문에 두 번째 곡 정도로 앞쪽에서 기절하는 사람이 생기거나 여러 가지 일이 있어서요. 그게 다 한 길이의 결정이었던 것 같아요. 그런 와중에 25년 동안 해왔는데 박수에 전부를 담은 한결같다는 건 지금까지 느꼈던 것과는 달랐어요?



후지: 다르다던가 하는 것이 아니에요. 오히려 박수뿐인데 똑같은 걸 느꼈고 그 의미를 새삼 강하게 느꼈을까? 계속 생각했던 것을 재인식하는, 역시 그런 거구나 하고 다시 한번 강하게 생각하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이었네요. 아까, 목소리가 없어서 박수만 치는 상황은 처음인데 그걸 그리워했다는 얘기를 했는데 목소리와 박수로 맞이해 주었을 때와 같은 기분이 될 수 있다는... 요점은, 그만큼 박수 속에 목소리를 포함해서 다 담아줬겠지라는 생각이 들어요. 그런 생각을 다시 해도 다시 그 기간에 마쿠하리 멧세에서 라이브를 한 것도, 'Silver Jubilee' 라는 라이브 하우스 투어를 돌 수 있었던 것도, 정말 다행인 것 같아요.



▶후지로서도, 이 타이밍에 라이브 하우스 투어를 돌고 싶다거나 한 생각이 있었나요?



후지: 저는 그런 건 별로 없고. 들어주고 있는 사람을 만나고 싶다고 하는 것부터 전부 정해져 있기 때문에, 그 이외의 규모감이라던가 거기에 관해서는 딱히 라는 느낌일까. 우리 지금까지도 라이브 하우스에서 많이 했으니까.'aurora ark'도 라이브 하우스가 섞인 투어였고 'PATHFINDER' 도 그랬고. 라이브 하우스에서 라이브를 하는 것이라든지 라이브 하우스가 투어에 섞여 오는 것이라든지 라이브 하우스 투어를 돌고 나서 아레나를 한다든가 그것은 커리어 내내 계속되어 온 일이기 때문에 저한테는 자연스러운 일이에요. 단지, 확실히 주위에서 꽤 많이 말해 주셨거든요. 이 타이밍에 라이브 하우스 투어 드물지 않아? 오랜만에 라이브하우스 하고 싶어졌어? 라고. 저희로서는 뭔가 생각할 것이 있어서 지금 라이브 하우스 투어라는 형식으로 한 적은 전혀 없었기 때문에 그런 말을 듣는 것에 관해서는 '네?' 이런 느낌이었는데요.



▶확실히 이 밴드의 루틴이긴 하지, 라이브 하우스 투어부터 아레나 투어라는건.



후지: 그렇죠. 코로나19 사태와 상관없이.



▶다만, 나는 그렇게 후지에게 말한 사람들의 마음은 조금 알겠어. 왜냐하면 2020년 후반부터 2022년까지는 언제 다시 라이브를 할 수 없게 되어도 이상하지 않다는 마음을 가지면서 라이브에 임하는 아티스트들도 많았던 것 같고 그렇게 되면 필연적으로 자기들이 할 수 있는 최대 능력치로 할 수 있는 것을 우선시한 사람이 많았다면 많았으니까. 그래서 일단 라이브 하우스 투어부터 시작했다는 게 신기하게 비쳤을지도 모르겠네요.



후지: 그렇군요. 나에게 있어서는 정말, 거기에 특별한 의미가 있었던 게 아니고 마쿠하리 멧세 이후에 바로 아레나 규모의 투어가 시작된다고 해도, 분명 같은 마음으로 했을 거예요. 다만, 마스 군이 아까 말했듯이 물리적인 가까움에 조금 쑥쓰러워 질 때는 있었어요. 마음의 가까움은 같다는 것은 예쁜 일이 아니라 정말 진실, 사실입니다만, 역시 물리적으로 가깝다는 것은 말이야. "이거 배 꼬르륵거렸다가 들킬 텐데.“ 이런 것도 있잖아 (웃음)



▶알아(웃음)



후지: 재채기 하면 엄청 시끄럽겠는데 이런거라던가. 그래서 창피하지 않게 하고 싶은 건 있었는데 (웃음)



▶히로는 라이브하우스 투어, 어땠어요? 해가면서 여러가지 것이 해소되어 온 듯한 감각도 있었나요?



히로: 있었네요. 예를 들어 박수뿐이라는 상태에 대해서도, 아마 처음에는 당황도 있었지만, 당황을 느낀 것을 이제 별로 기억나지 않을 정도, 거기에 모든 것이 타고 있다는 상태에 익숙했다는 것인가. 다만 물리적으로 박수가 멈추었을 때마다 엄청 정적이 있고 그래요. 옛날이면 예에~ 라던가 약간의 함성이 있었기 때문에 정말 무음이 안 태어났지만 (목소리 내기 금지 때문에) 무음 순간이 생기는 일이 있어서. 그러면 순간 움찔 하는데 (웃음) 그래도 긍정적으로, 즐거운 것으로 파악될 정도로 되었네요. 아까 얘기한건데, 우리가 라이브하우스 투어를 하고 놀랐다는 건, 그렇게 공백이 있었나 싶어서요. 3년 만이라는 것은, 중학생이 고등학생이 될 정도의 기간이 비어 버렸다는 것이기 때문에. 어떻게 해야 그렇게 될 수 있을까



후지: 확실히 그럴 수도



히로: 역시,우리는 라이브하우스에서 시작되고, 후지군도 말한 것처럼 라이브하우스에서 하는 것 자체는 밴드에 있어서 굉장히 자연스러운 일이라 해서. 그런 에너지 순환 같은 일이 겨우 생겼다는 느낌은 있었을지도 몰라요. 역시 단순하게 파워를 받는다 하지만 이를 낼 시간이 중요했던 것 같아서 다시 생각하게 되고. 그게 점점 좋은 느낌으로 튜닝이 되어 간 투어이기도 했냐 그러면 정말 다행이란 생각이 들어요.



▶그럼 여기부터는 'be there' 이야기로 옮겨가겠습니다. 타이틀이 'Silver Jubilee'그리고 'be there' 이렇게 바뀐 것도 포함해 2023년이 되었기 때문에 모양도 새롭게! 같은 기분도 있었습니까?



후지: '그렇죠.저 그대로 'Silver Jubilee'아레나 투어를 한다는 생각도 있었을지도 모르지만, 그건 뭔가 다른게 아닌가



마스: 역시 이제 27주년이 되고 있고(웃음)



후지: (웃음). 내가 손님 입장이라면,역시 ’언제까지 25주년 하는 거야?‘ 이렇게 될 것 같아 (웃음)



나오이: 전원의 공통 인식으로 언제까지 청취자 모두에게 'Silver Jubilee' 축하하게 하는 거야, 같은 우려는 있었습니다. 2023년이나 그걸 하는 것은 좀 너무 길지 않나 (웃음)



▶하하, 생일파티가 너무 많으면.



후지: 맞아요



마스: 그리고 역시, 라이브하우스 투어에서 제대로 잘라낸 것으로 우리 안에서 한 단락이 붙었다고 할까. 그래서 'Silver Jubilee'와는 또 다르다, 뭔가 좋은 개념이 나타나면 되는 느낌으로 다들 서로 이야기해줘서



히로: 그 가까운 건 라이브하우스 투어를 돌며 꽤 얘기했잖아. 어떻게 할까? 같은 이야기는 모두 했어요. 아니면 역시 라이브하우스를 도는 동안은 좀처럼 그쪽 모드까지 머리가 가지 않는다는 것인가. 열심히 이야기 했는데요,그냥 얘기하고 끝나는 상태가 계속되고 있어서.



마스: 「be there」라는 제목이 정해진 건 끝난 뒤였지

나오이: 그렇지. 전혀 다른 형태로 아레나 투어가 생기면 좋겠다 라는 얘기는 했는데, 그럼 뭐가 좋을까라는 건 역시 좀처럼 어려워서



후지: 앨범이 나온 것도 아니고



▶하지만 앨범 발매 같은 계기가 없는 가운데 아레나 투어를 할 수 있다는 것은 현실적으로 매우 행복한 일이라고 생각해요.



마스: 응, 정말 그래요.



나오이: 4명 모두 앨범을 내지 않고도 하는 투어도 좋아하니까. 물론 앨범에 관한 투어도 정말 좋아하지만 내세울 수 없는 투어의 장점으로 앨범 곡에 포커스를 맞추지 않고 여러 곡을 하고 그걸 청취자와 공유할 수 있다는 장점도 있으니까요. 다만 곤란한 것은, 개념이 없다는 점(웃음).



마스: 결과적으로 'be there' 는 후지군이 생각해냈고 제안해줘서.



나오이: 그때 ‘우리가 생각했던 거다!‘ 이렇게 되었지? (웃음)



▶ 4월에 발매된 「窓の中から」라는 곡에 ’여기에 있어‘라는 가사가 있고, 이걸 들었을 때 be there와의 싱크로를 느꼈는데 실제로 그런 연결 같은 게 있었나요?



후지: 아니요, 이건 우연이에요



▶그렇구나.



후지: '응. 그냥 정말 우연이지만 그렇다고는 해도 같은 인간이 생각한 것이기 때문에. 그러니까 아마 이 시기에 강하게 생각했던게 저절로 그런 우연을 부른 게 아닐까.



▶「be there」 라는 말은 어디서 태어난 말인가요?



후지: 지금까지 했던 스토리가 너무 컸던 것 같아요. 코로나 이후로 그렇게 살아오면서 「Silver Jubilee」 라는 투어를 다니다가 느낀점이 자연스럽게 'be there' 라는 말이 됐다는 느낌이죠.



▶ 「Silver Jubilee」 을 해낸 것으로, 다음 투어에 대한 의미 같은 게 확 보이기 시작했다고.



후지: 이것 또한 신기한 건데, 「be there」 라는 말을 만나고 나서 그게 보였다는 느낌이야 (웃음) 앞으로 예정된 타마아리 (사이타마 슈퍼아레나) 투어에 'be there' 라는 제목을 붙여야겠다고 마음먹은 순간에 순간 그게 보이기 시작했다고 해야 되나? 그러니까 역시, 제목이 만들어져서 라고 하는 것은 큰 일이겠지요. 「be there」 라는 제목이 붙으면서 갑자기 그 개념이. 먼저 네 사람 사이에서 공유되는 가치관을 보게 되었고 무언가가 태어나고 향해야 할 방향이 보인, 그런. 좋아. 우리는 지금 'be there' 뭐냐, 'be there' 을 전해나가자. 이런... 그 이상의 설명을 말로 표현할 수 없지만(웃음). 갑자기 그런 느낌이 들었어요.



▶아니, 그래도 뭔가 알겠어요. 그런 걸 반복하고 있는 거지.



후지: 그렇습니다. 홈쉽 위성 (2008년 투어) 때도 제목이 정해지면 갑자기 그런 느낌이 들었고. 이번에도 그랬네요. 세트리스트 내용상으로는 첫 번째 곡 같은 건 'Silver Jubilee' 와 다르지 않은데. 그래도 역시 우리 안에서의 개념은 달라서.



마스: '그래서 구체적으로 조명을 이렇게 바꿨다든가 연출을 이렇게 바꿨거나 그런 얘기가 아니라 우리 정신성이 그쪽으로 다 간다는 느낌이야.



나오이: 곡에 관해서는 사실 저희는 처음에 다 바꾸자는 얘기도 했었는데. 근데 그 대화 자리에 스태프도 같이 있어서 객관적인 의견을 줬거든요. ’라이브하우스 투어를 보고 싶어도 못 본 손님이 전국에 얼마나 있을 것 같아요?‘ 라고



▶스윽 정론이 들어왔네 (웃음).



나오이: 맞아요(웃음). 저희 4명은 역시 전국을 돌며 해낸 마음도 있고 이미 충분히 한 것 같잖아요. 하지만 ’이번 아레나 투어에 응모해 주신 고객이 이렇게 있어요. 그 사람들 중 몇 명이 라이브 하우스 투어를 볼 수 있었다고 생각하나요?‘ 이래서 4명 다 머리가 팟! 이렇게 돼서. 라이브 하우스 투어 전체에서 오는 손님의 수는 대략 아레나 2곳 정도의 인원과 같기 때문에, 그래서 이 세트리스트는 이미 충분히 다 한 건 아니지 라며 스태프들의 조언을 들으면서 그것도 포함해서 이 타이밍에 확 바꿀만한 것도 아니구나 하고 4명 다 생각이 들었기 때문에 세트리스트에 관해서는 마이너 체인지라고 할까. ......그렇다고는 하지만 상당히 달라지기는 합니다만, 기본적으로 그런 생각으로 짜갔죠.



후지: 그것까지는 변하지 않는 세트 리스트지만, 그래도 마음은 달라서. 「Silver Jubilee」 그 말은 자기 밴드 간판의 25번째 생일에 박수를 받는 것 같은 건데요. 「be there」 은 그것과는 역시 달라요. 「Silver Jubilee」 이미 는 연기에 연기를 거듭해야겠다는 느낌이었지만, 거기는 아무래도 25라고 하죠. 4분기는 구분이 잘 되는 곳이잖아요. 뭔가 기쁘잖아요.



▶하지만 밴드가 4분기 지속되는 것은 단순히 위대한 일이 된 거예요.



후지: 그것도 들어주는 사람이 있어서 말이야. 너무 감사한 거죠. 그렇기 때문에 아무래도 우리 음악을 소중하게 들어주는 사람에게 '이 간판에 박수 좀 쳐도 될까?' 라는 마음이 있어서... 그 한 사람 한 사람이 생일파티에 제일 와 줬으면 하는 사람이니까. 그런 개념으로 마음껏 했는데. 그다음에 챠마가 방금 말했듯이 거기까지는 변함없는 세트리스트로 이번에는 아레나 투어를 했는데, 「Silver Jubilee」 덕분에 25주년을 맞이할 수 있었습니다. 감사합니다 라는 개념이었던 점에서, 「be there」 되는 순간에 '지금의 우리가 당신들에게 전하고 싶은 말입니다' 같은 기분이 세져서... 물론 어느 투어에도 어느 쪽의 개념도 있지만요. 그냥 그 균형이 좀 다르다고 해야 되나? 그게 우리에게 너무 큰 일이었죠.



▶처음에 말씀드렸다시피, 이번 'be there' 저는 첫날 아리아케 아레나와 마지막으로 타마아리(사이타마 슈퍼 아레나)를 봤는데 지금 후지가 말씀하신 것, 투어 첫 날 굉장히 느꼈어요. 그렇게 느낀 가장 큰 상징은 오프닝이었거든요. SE가 되어 무대 소매부터 4명이 차례로 나오는데 그대로 메인 스테이지를 그냥 지나 꽃길을 걸어가 센터 스테이지에 섰던 그 때 흥분은 정말 말도 안 되었고. 물론 갑자기 센터 무대부터 시작하는 라이브가 다른 아티스트들도 가끔 있긴 하지만 다만 현실적으로 밴드에서 오프닝부터 그 안으로는 좀처럼 가지 않아요.



후지: 그렇구나 (웃음)



▶하지만 이번 오프닝, 게다가 메인 스테이지의 양쪽에서 하나미치라고 하는 그저 그런대로 긴 거리를 걸어서 휙휙 사람들의 한복판으로 들어가는 광경이라는 것은 매우 흥분되었어요. 요점은, 우리 한가운데에 BUMP OF CHICKEN이 갑자기 왔다! 라는 말이야. 저건 상당히 충격적이었어요. 게다가 거기서 아카시아', '궁그닐', '천체관측'이라는 세 곡을 한다는 건 선곡도 포함해서 확실히 완벽했어요. 요점은, 그 위력은 굉장했다.



후지: 감사합니다. 그거 제작진이 생각해준 건데(웃음)



▶어머, 나이스 아이디어 좋았어.



나오이: "be there" 라는 제목을 정할 때도 스태프들이 옆에 있어줬거든요. 후지와라군이 제목과 함께 그 이유이거나 이미지를 저희들에게 전해주셨는데 스케줄적으로, 이제 그 타이밍에 바로 VERDY군이 투어 로고를 만들어 주지 않으면 늦을 수 밖에 없다, 그런 상황에서 (웃음). 그러니까 최대한 빨리 모두에게 공유하고 시간 맞춰 열심히 해야 할 타이밍이었기 때문에 스태프 여러분도 그 현장에 있어주셨잖아요. 그래서 후지와라군이 창 안에서 보고있는 경치구나 라는 얘기를 해줬을 때 실제로는 그런 간단한 얘기가 아니라 더 여러 가지 얘기를 해줬는데 그 얘기를 들은 스태프들이 여러 가지 아이디어를 내줬거든요 단지, 실제로 센터 스테이지부터 시작한다고 된 것은 꽤 직전이었지?



마스: 응, 이제 리허설 마지막 단계 같은 느낌일 때.



나오이: 아까 시캇페가 칭찬해 주었는데, 저도 그 아이디어를 들었어요. 아니면 감동했다고 해야 되나? 벅차올랐어요. 사소한 차이지만 센터 스테이지부터 시작함으로써 단숨에 'Silver Jubilee' 에서 'be there' 으로 전환되는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우리는 그렇게 한 적이 없었으니까, 대단하다고 생각되어서.



마스: 우리에게서는 절대 나오지 않는 발상이지. 원래 중간에 센터 무대 가는 건 있었는데 처음부터라는 것은.



나오이: 너무 다행이라고 생각해요



▶멋있었어요, 진짜. 심지어 「be there」 이 시작된 그 시기는 시대의 전환기였다고 생각하거든요. 즉, 그 시기부터 목소리를 내는 것이 해금되어 갔죠. 바로 그 시작 순간에. 그러니까 2월 11일 첫날부터 하고 이미 「Silver Jubilee」 라고 하는 것은 분명 회장의 경치도 공기도 다르고, 그것도 흥분됐는데, 본인들끼리 뒤돌아보면 어떻습니까?



후지: 「 Silver Jubilee」 때는 소리를 내면 안 됩니다 라는 룰에 따라 돈 투어고, 해가 바뀌어서 「be there」 되고 나서는 목소리 내도 됩니다 이렇게 돼서. 아까는 목소리를 못 들어도 원래 다들 소리를 내주고 있겠지 하는 부분에 목소리가 없는 상태여도 그 공백마저 사랑스럽고, 온 힘을 다해 다들 거기를 느낀다는 얘기를 했는데 거기에 예쁜 것도 네거티브한 마음도 정말 전혀 없었군요. 그 사실을 대전제로 되어 있습니다만, 그 후에 'be there' 을 했을 때... 그야말로 첫 번째 곡 '아카시아'라는 곡이 상징적인 곡이었는데, 그 곡 만들었을 때 분명히 흥정 같은, 제가 부르고 들어준 사람이 불러줬으면 싶은 그런 노래가 있어요. 내가 여기서 ‘오예’라고 부르면 손님들이 예이라고 돌려주나라는 걸 명확하게 상상하면서 녹음하고 있었어. 그런데、 「Silver Jubilee」 할 때는 제가 예~ 하고 노래를 부른 다음에 멤버가 예~ 이렇게 돌려주고 눈앞에서는 손님이 손을 들고 있어요. 그 광경만으로 넘칠 것 같은 기분이 들었지만 근데 'be there'에서 실제로 손님 목소리가 돌아왔을 때 드디어 '아카시아'가 완성된 것 같은. 그 곡을 쓴 지 벌써 3년이나 4년 정도 된 것 같은데 제가 이 "아카시아"를 쓸 때 생각했던 완성형 이런 걸 드디어 들을 수 있었어, 이런 기분이 들어서. 내가 오예~ 라고 부른 것에 비해 멤버들이 '예이'라고 쫓아가는 형태로 노래에, 거기에 엄청나게 두꺼운 예~가 가세했을 때, "아, 이게 완성이구나." 이런 느낌이 있더라고요. 그래서 그런 생각이 드는 순간들이 정말 많이 있어서. 공백을 전력으로 듣고, 그 공백에 엄청난 정보량을 느껴 참을 수 없이 사랑스럽고 기쁘다는 투어를 돌고 난 후이기 때문에, 괜히 손님들의 구호라던지 노랫소리라던지 너무 기뻤고 다시 한 번 더 강하게 저에게 있어서 그것이 이토록 큰 것인지, 얼마나 소중한 것인지, 그리고 얼마나... 그걸 듣고 싶었는지 그 크기를 깨달았어요.



▶하나 더 묻고 싶습니다만, 퍼포먼스가 많이 바뀌었다고 들었습니다. 구체적으로 던지는 소리, 메시지가 달랐다고 느꼈어요. 「Silver Jubilee」 때는 서로 여기서 마주보고 라는 것의 기쁨, 상냥함, 애정 같은 게 되게 부드럽고 동시에 되게 뜨거운 느낌이었던 것 같은데 「be there」 되고 나서는 거칠어졌다고(ごつごつ) 할까, 휘익 하고 모두의 손을 잡고 ‘따라와!' 라고 잡아당기는 듯한 인상을 받고, 그게 많이 변한것 같은 이미지가 있었어요. 이건 본능적인 거였다고 생각하는데 그 말을 듣고 뭔가 자신 안에서 생각나는 것이 있습니까?



후지: 그것에 대해서는 봐 준 사람이 생각하는 것과 저 본인이 생각하는 것은 또 다르다고 생각합니다만. 뭐 앞으로 제가 할 말도 대충 예상이 되지 않을까 싶은데 저는 원래 그런 놈이에요. 본질적으로



▶ 무슨 말이야?



후지: 필사입니다



▶아아 (웃음), 네, 아주 알아요.



후지: 이미, 옛날부터 계속 필사적입니다. 예를 들어 '옛날에는 핸드마이크 같은 건 안 했는데, 달라졌지.‘ 라는 말을 들은 적도 있고 이거 읽는 사람 중에도 그렇게 생각하는 사람도 있을 수 있는데 저로서는 핸드 마이크 하기 시작했기 때문에 바뀐 게 아니라고 말해요. 단순히 할 필연이 태어난 거예요. 원래는 (스테이지에) 하나미치가 생긴 일이 한 계기였는데 하나미치는 원래 우리가 하고 싶다고 말한 것이 아니라, 프로듀서의 의향으로 갑자기 하나미치가 태어난 거예요. 하지만 해보니 엉망진창이 되었어요. 필사적으로 당신 쪽으로 가고 싶다고 생각했기 때문에. 몇 번이나 같은 말을 해 버립니다만, 우리는 정말 물리적 거리는 상관없이 앞열 손님에 대해서도 가장 뒤 손님에 대해서도 같은 마음을 느끼고 있고, 오지 못한 사람까지 생각하고 어디에 있었다고 전해오고 싶다고 항상 생각하고 싶다고 항상 생각하면서 라이브를 하고 싶은데요. 다만 그 생각이 강하면 강한 만큼, 눈치를 알면 물리적으로도 가까이 가고 싶다고 생각하는 자신이 있거든요.이건 모순되어 들릴지도 모르지만, 제 안에서는 전혀 모순되지 않아서, 그걸 설명하는 건 너무 어렵지만



▶아니, 잘 알 수 있어요.



후지: 그런 자신들에게 있어서, 하나미치는 손님 근처에 갈 수 있는 매우 기쁜 장치였어요. 그러면 필연적으로 핸드 마이크로 해야 하는 부분도 나오고. 근데 핸드 마이크를 하기 시작해보니 '여기는 나, 기타 치지 않아도 되겠다‘ 그런 부분을 알기도 하거든요. 그러면 핸드 마이크로 할 수 있는 곳도 많아지고 그렇게 알아가다 보면 점점 양도 늘어나고 모두 필연적인 일이죠.



▶당신에게 음악을 전달한다는 것에 필사적이지만 고의, 필연.



후지: 그렇죠. 필사적이지만 고의. 그게 모든 근원이니까. 반대로 옛날부터 라이브 보고 있는 사람에게 묻고 싶은데요,내가 필사적이지 않았던 적이 있습니까? 없죠? 라고.핸드 마이크에 대한 설명이 되어버렸지만,아까 카노 씨의 질문에 대해서는 이거랑 똑같은 말을 할 수 있을 것 같아서. 힘차게 (グイグイ)해 온 느낌이 든다는 것도 그야말로 매번 투어 후에 말을 듣거든요. 「aurora ark」 할 때도 그러더라고요. 퍼포먼스가 지금까지와 달랐다던가.



▶그때는 핸드마이크라든가 춤을 추었다든가, 여러 가지 사건이 있었으니까. 확실히 이 7, 8년 후지의 퍼포먼스 기술의 많고 텐션을 내는 방법의 생생함은, 분명히 공격하고 있다든가 진화한다든가 각성하고 있다든가, 그런 말이 어울리는 것이긴 한 것 같아.



후지: 하지만, 그것도 이것도 단지 필사적이기 때문입니다. 그건 저뿐만 아니라 다른 멤버들도 그래요. 어떻게 하면 하나미치를 이용해서 사람들 가까이 갈 수 있을까? 어느 곡의 어느 부분에서 나는 갈 수 있을까라는 걸 각자가 생각하고 있고. 그래서 아리아케와 사이타마가 또 달랐다고 생각합니다만, 왜 그런 변화가 일어나냐면 그건 투어 중에 세트리스트 하면서 알아가는 부분도 있어서 그래요. 그런데 어떻게 알아채느냐 하면 그건 다들 필사적이기 때문이에요. 심지어 왜 필사적이냐면 음악이라는 게 그런 거잖아요. 그저 그만한 얘기예요.



▶지금의 이야기를 전부 이해한 후에, 굉장한 반사신경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합니다. 「Silver Jubilee」 와 「be there」 눈앞에 펼쳐진 공기가 달라져 있었을 테고, 「be there」 그중에서도 2월과 5월에는 또 분위기가 달랐던 것 같은데요. 그 시기의 그 느낌을 굉장히 반사신경적으로 캐치해서 노래를 부르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 모습이 대단하다고 생각했거든요.



후지: 그런 반사 신경이 좋았다고 생각할 수 있다면, 그거 되게 좋았던 것 같은데. 저로서는 결국은 아까 했던 필사함으로 이어지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의식한 적은 없네요. 다만, 한 가지 말을 하자면 그렇다면 옛날부터 생각했던 1회1회 라이브의 의미라던지, 끈적끈적한 말투로 말하자면 라이브는 1기1회구나 라던가, 라이브는 그 순간찰나네요. 그런 건 옛날부터 당연히 우리도 느끼고 온 것이지만, 그 의미가 자신들 중에서 보다 절실한 것이 되어 있는 것이에요. 손님이 와주는 것의 의미라든지, 그 손님 한 사람 한 사람이 각자의 생활 속에서 스케줄을 맞춰 와준다거나, 티켓을 사준다는 의미라든지. 그래서 울고 있는 사람도 있고 뛰어다니며 기뻐하는 사람도 있어요. 가만히 듣고 있는 사람도 있고요. 한 번 라이브를 하면 여러 사람의 여러 모습을 볼 수 있지만, 그 하나의 의미가 보다 무겁고 보다 크게, 보다 절실하게 느껴져요. 오늘을 기점으로 더 이상 만날 수 없을지도 모른다는 것은 옛날부터 생각하고 있지만, 옛날보다 더 소중한 사람과 만날 수 없게되는 경험도 저희 각자 하고 있고요. 손님에 대해서도 그건 느끼는 거죠.

그러면 무대에 서서 느낌이 있다는 것도 옛날과 다를 바 없는 일이지만 엄청 간절하더라고요. 그게 순발력으로 이어질 수도 있겠네요. 지금을 놓치면 더 이상 만날 수 없을지도 몰라. 그렇기 때문에 지금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하고 싶다, 이런. 옛날부터 '다음에 또 해도 돼' 라고 생각한 적은 한 번도 없는데요. 하고 싶은 말 알지?



▶ 물론.



후지: 거기에 대한 필사적. 간절함 같은 건 역시 옛날에 비할 바가 아니에요. 뮤지션으로서의 활동 연수도 나름대로 지났고 각자 사람으로서 나이도 많고. 보물같은 멋진 기억이라면 무거운 쐐기 같은 느낌으로 마음에 남는 것도 있고. 그런 것들을 다 안고 무대에 오르는 거니까요. 아무것도 달라진 게 없는데 그냥 더 진해지고 있는 것 같고 더 간절하고 더 필사적입니다. 진짜, 그것뿐이에요. 봐준 사람이 어떻게 생각해도 상관없지만, 그거에 대해서 질문하시면 저로서는 이렇게 대답을 해요. 그냥 필사적이라고. 그뿐이라고.


▶마스는 'be there' 을 되돌아보면, 어떻습니까?



마스: 저는 센터 스테이지에 가본 적이 두 번밖에 없는데요

후지: 처음과 도중에 말이야



▶ 드러머는 두번만 가면 충분합니다. (웃음).



마스: 하하하하, 충분한가?



후지: 벨트컨베이어 준비하는게 좋지 않을까? 자동으로 이렇게 갔다 왔다를 반복하는 것처럼



▶하하하하. 뭔가 옛날에 Def Leppard였는지 Dokken이었는지가, 그런 것을 하려고 했던 것 같은 기억이 있는데(웃음).



마스: 맞아, 하드록 쪽 발상이지. 그건 놔두고 'be there' 의 투어는 역시, 노랫소리를 포함해서 환호성이라니 너무 기쁘구나 라는 생각이 다시 들었어요. 어딘지 모르게 야무진 목소리로 '마스!!' 이러면 세상에서 나를 마스라고 부르는 것은 시캇페와 너밖에 없지 않은가? 이런 느낌이 들기도 하고 (웃음)



▶ (웃음)



마스: 그래서 여러 가지 돌아왔구나 하는 기쁨은 있었어요. 잠깐 얘기가 돌아오는데 목소리 낼 수 있게 된다는 건 리허설 마지막에 정해졌는데 그로 인해 곡이 늘어난 거죠. 구체적으로 말하면 fire sign이랑 supernova랑 虹を待つ人를 세트리스트에 추가했거든요. 그것은 우리 중에서 모두와 함께 부를 수 있을 때까지 간직하고 싶었던 곡이었기 때문에 그러면 이 타이밍이라고 해서 넣은 거예요. 그래서 그 세 곡을 넣는 대신에 어떤 곡을 그만둘까? 라고 다 같이 생각했을 때 뺄 곡이 없어서



후지: 없었지. (웃음)



마스: 그럼 늘릴 거냐고 했어요



후지: 역시, 소리 내기 OK 이렇게 되면 그 3곡을 하고싶어서 라고. 아무리 공백이 사랑스럽다고 해도 싱어롱 형은 과연 어떨까 해서 참고 있었어.



마스: 참았어. 그건 계속 챙겨놨죠.



히로: 하지만 정말, 최종 리허설의 마지막 쪽이었지



마스: 앞으로 2일 있으면 리허설이 끝난다. 정도의 타이밍이었던 것 같아. 그래서 투어에서 이 곡들로 모두의 노랫소리를 들을 수 있었을 때는 정말 감동했습니다. 이거야! 하고. 모두도 그걸 당연하게 불러주고 있었던 게 너무 좋아서. 그 곡들은 리허설로 아무리 해도 완성이 안 되거든요. 물론 다른 곡들도 그렇지만 특히 이 세 곡은 라이브에서 다 같이 불러주는 걸로 '이런 곡이었구나'라고 다시 한번 강하게 느끼고. 결국 "虹を待つ人"는 거의 매번 했는걸요, 앙코르로. 역시 괜찮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히로, 열심히 했지?



히로: 에!? 갑자기 그런, 깜짝 놀랐어요 (웃음)



▶ 기타는 물론, 기타리스트 이외의 부분도 열심히 했구나. 축구에서 말하는 포지셔닝인데, 그걸 너무 열심히 했어.



히로: 고마워요. 그래도 열심히 하고 있었어요. 굉장한 소리를 들었네 (웃음)



후지: 손님에게도 「힘내~」 라는 말을 들었는걸. (웃음)



히로: 그렇지(웃음). 뭘까? 처음 센터 스테이지부터 시작됐나 그랬는데 해보면 정말 즐겁기도 하고 유기적으로 생겼구나 싶어서. 뭐 하고 있는 것은 변하지 않는군요. 단지 물리적으로 보다 가까이서 연주하고 있다는 것만으로 하늘을 나는 것도 아니고 기특함을 뽐내는 것도 아니고 그냥 밴드로 할 수 있는 범위의 일을 하는 거라서요. 그래서 정말 재밌게 할 수 있었고 함성도 많이 받고 노랫소리도 많이 받았고 응원도 많이 받았고(웃음). 너무 행복했어요.



▶지금 것이 표층적인 이야기. 그래서 진지한 이야기, 아마 코로나 때문에 상당히 기타를 연습하셨겠죠?



히로: 아, 네. 그렇군요.



▶특히 아레나 투어에서 기타가 엄청 울렸어요. 육수가 진한 기타가 되어 있었다고 할까, 깊게 몸에 와닿는 기타로 되어 있어서. 열심히 했구나 하고 마음대로 생각했어요.



히로: 잘 말할 수는 없습니다만, 저희 밴드 가사라든가 곡이라든가 멜로디가 더 깊이 있게 들리는 느낌이 있어서. 코로나 상황이라든가 상상조차 할 수 없는 시대에 쓴 곡이라도 후지와라군이 쓴 가사는 지금과 대조해서 여러 의미로 받아들여질 수 있어서. 그런 걸 본방사수는 물론 리허설을 하면서도 느끼는 게 늘었다고나 할까요. 곡 자체는 바뀌지 않았는데 시대가 바뀜에 따라 그 곡을 포착하는 자신의 체질, 감각이 달라진다고나 할까. 그래서 그건 어쩌면 연주면에서도 그런 현상이 있었을지도 몰라요. 그로 인해 그 곡에 대한 접근이 깊어지는 방향으로 바뀐 부분은 있었을지도 모르겠네요.



▶매우 뜨거운 라이브였습니다만, 동시에 굉장히 진지한 라이브였던 것 같고 그런 마음으로 하는 게 굉장히 전해지는 아레나 투어였어요.



나오이: 그렇게 말해 주셔서 기쁩니다. 개인적으로 연주에 관해서는 전보다 더 베이스를 치고 싶고 베이스로 전달하고 싶은 마음 이 강해지고 있고. 코로나도 그렇지만 혼자 마주보는 시간, 베이스 연습하는 시간이 되게 많았거든요. 그야말로 1부터 폼을 개선해 나가기도 했고요. 그렇게 혼자서 많이 악곡을 마주하다 보면 아직도 내가 할 수 있는 것들을 많이 발견할 수 있고. 「Silver Jubilee」 나「be there」 는 그것을 라이브로 실제로 시도할 수 있었던 자리에서도 있더라고요. 딱히 진지하게 하자고 의식한 건 아니었는데 하지만 결과적으로 굉장히 음악에 열중해서 연주할 수 있었구나 라는 생각이 들어서 그건 생각해요. 라이브 중에도 다른 멤버들을 더 가깝게 느끼고 있었고...실제로, 히데의 옆, 히로의 곁, 후지의 곁으로 가는 양이 저는 늘었다고 생각합니다만, 그건 저한테 그때그때 필요한 일이었거든요. 손님 가까이 간다는 것도 「be there」 그럼 또 늘었을 수도 있겠다. 뭐랄까... BUMP OF CHICKEN의 음악을 잘 전달하고 싶은 느낌이 아니라, 그 깊이를 더 깊게 하고 싶다는 마음이었어요. 그러기 위해서, 제 베이스에서 아직 할 수 있는 게 많다는 걸 시도한 투어였던 것 같고 정말 하나하나 의미 있는 무대가 된 것 같아요. 그래서 또 바로 투어를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더라고요. 이번 투어를 통해서 앞으로 더 많은 것을 시도해보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그래서 투어가 끝났을 때 여러분들에 대한 감사 후에 더 하고싶다 라는 마음이 생기고. 지금도 그런 마음이에요.



▶지금 이야기는, 완주를 한 것에서 긍정적인 의미에서의 목표와 과제가 더 명확해졌다는 것이기도 하죠.



나오이: 그렇습니다. 그래서 투어가 끝나자마자 후지와라군이 저희에게 악곡을 전해준 것에 대해서도 감사드리고요. 지금 그 곡에 몰두하고 있는 덕분에 제가 시도하고 싶었던 것을 실제로 시도할 수 있게 됐어요. 투어가 끝나서 외로울 뿐만 아니라 그렇게 새로운 시도를 하게 되는 거죠. 그래서 또 즐겁고 새로 태어나고 있습니다. 그냥 그 곡 너무 어려워서 (웃음)



▶그렇군요



나오이: 다만 그것은 분명, 언젠가 그 곡이 발표되고 들렸을 때 에, '이거 챠마가 왜 어렵다고 했는지 모르겠어'. 라는 말을 들을 수 있기도 해요.



마스: 알겠어! "뭐, 어디가 어려워?" 라고 될 것 같은 (웃음)



후지: 별로 바보같은 곡도 아니잖아. 이런 식으로 말이죠.



나오이: 아마도 "어, 이거면 나 쉽게 할 수 있어" 라고 말하는 사람이 꽤 있겠지 하는 곡이고요. 그렇게 말하고 싶은 마음은 알고 있고 그 전원에게 리스펙트는 물론 있지만요~



후지: 만나서



나오이: 그래, (곡을)만난 후에 말하면, 아무것도 아닌 어려움이 막힌 곡으로(웃음).  8비트의 어려움을 다시 한번 체감하고 있는 거죠. 그것과 지금 하루하루 싸우고 있습니다.



▶힘내요. 거기에 관한 대답은 언젠가 곡이 발표되었을 때 꼭 합시다.



나오이: 네, 부탁드립니다. (웃음)



▶ 저는 항상, 투어 마지막날 후지MC를 떨면서 듣고있어요 그런데 이번에도 멋진 말씀을 남기셨네요.

후지: 오, 정말요?



▶굳이 두 가지를 꼽자면, 하나는 '나 자신은 네 일상에 붙어있어. 근데 내가 못하는 건 나는 음악을 할 수 있어요. 내 음악은 너의 일상을 따라갈 수 있어. 네가 바라기만 하면 집이든 학교든 회사든 어디든 따라갈 수 있어요.그래서 음악을 하고 싶은 것 같아요. 나는' 이라는 말이. 물론 그 말은 지금까지와 같은 마음을 전하고 있을지도 모르지만, 정말 멋져요. 마음에 와닿는 메시지였어요.



후지: 아, 감사합니다



▶또 하나는, ’마침 지금, 새로운 곡을 만들고 있어‘ 라는 명확한 말이에요. 그 말에서 내일을 느낄 수 있어서 이것 또한 꾹 전해져왔어요. 아까 챠마 얘기에도 있었지만 실제로 새로운 악곡 제작은 어떤 상황인가요?



후지: 앞으로 이야기할 것은 챠마가 매우 어렵다고 예로 들었던 곡의 이야기입니다만, 그 곡은 투어가 끝나기 한 달 정도 전부터 쓰기 시작했고, 조금씩 생겨나더라고요. 라이브 중간중간 도쿄에 있을 때 조금씩 스튜디오에 들어가서 조금씩 써갔어요. 그래서 어디 공연장에서는 '원 코러스 썼어' 이랬던 것 같고 어딘가의 회장에서는 '일단 2코러스 썼어' 이랬던 것 같고 그렇게 단계별로 손님들에게 보고를 한 거죠.



▶ 일기처럼 경과보고를 거듭했네요.



후지: 맞아, 맞아. 저에게 새로운 곡을 만드는 것은 손님을 만나는 구실이 하나 태어나는 것과 동일한거죠. 그렇기 때문에 '지금 이런 곡' 되어 있어서 말이야. 라는 것을 어떻게든 눈앞의 사람에게 전하고 싶어지게 되었어요.

그것은 매우 개인적인 생각입니다만, 그거에 대해서 박수라든가 함성이라든가를 돌려주거든요. 언젠가 MC에서도 말했던 것 같은데 빵집이 '빵이 탔어' 해도 오~ 이렇게 안 될 것 같거든요. 아니면 두부집이 '두부 만들었어' 했는데 으악! 이럴 수가 없잖아요. 근데 나는 오오! 이렇게 말해주는 그거 너무 감사한 일인 것 같아요. 왜냐하면 곡을 만든다는 건 뮤지션으로서 당연한 거니까. 그 당연한 걸 보고만 해도 박수를 받을 수 있다니 정말 기쁜 거죠. 정말 사랑스러운 청취자인데요. 그래서 그렇게 단계별로 보고를 드리면서 투어가 끝날 때까지 전체 분량을 쓸 수 있었던 것이에요. 멜로디랑 가사랑 코드 진행이 다 됐어요. 그래서 사이타마 공연이 끝난 후, 스튜디오에 들어가서 데모 만드는 작업을 했거든요. 구체적으로는 데모 음원을 가지고 예시본 (本チャン)을 녹음해주는 엔지니어분의 개인 스튜디오를 방문해서 음원을 더 채워 넣었어요. 투어 끝난 단계에서는 드럼이나 베이스까지는 넣지 않았는데 어느 정도 거기까지 어레인지를 채우는 작업을 하고. 기타도 일단 코드를 알 수 있을 정도의 음원이었던 것을 아르페지오를 넣거나 리프를 넣거나 햐는 작업을 2, 3일에 걸쳐 우선 혼자서 하고, 그런 다음 멤버들이 듣게 하는 흐름이었죠.



▶투어에서 하지않고 새로운 존에 들어갔다는 말씀이시군요.



후지: 그렇죠. 그래서 '후, 여기서 한 단락이다. 라는 느낌은 전혀 들지 않았다고나 할까, 그 기회를 놓쳐버렸어요(웃음)



▶라는 이야기로 돌아왔습니다만, 지금 작곡가로서 굉장히 충실하네요.



후지: 라고 하면? 여러 가지 충실한 방법이 있을 것 같은데요.

▶사이타마의 라이브를 보면서 다시 생각했습니다만, 4월에 발매되었던 「SOUVENIR」 의 패키지 싱글에는 "SOUVENIR"과 "크로노스타시스"와 "창문안에서" 이렇게 3곡이 들어있는데, 라이브로 듣고 있으면 그 세 곡의 곡조, 노래하는 것의 흐트러짐이 되게 균형이 잘 맞는 것 같아요. 그리고 악곡 전체에서 굉장히 업데이트 된 느낌을 느낍니다. 그것은 특히 "창문안에서" 와 "SOUVENIR" 에서 느꼈고, 현실적으로 그것이 새로운 BUMP OF CHICKEN의 청취자층으로 이어지고 있다고도 생각해요. 스트리밍으로 "SOUVENIR"을 도는 방법도 타이업만이 가져온 것이 아니라 곡 자체가 가져온 거구나 되게 느꼈고 '창문 안에서'도 이게  BUMP OF  CHICKEN의 몇 번째 대작이 아닐까라는 생각이 드는데도 완전히 새로운 감각을 느끼고. 대체로 자연스럽게, 그러나 확실히 업데이트가 되고 있구나 라는 생각이 들었어요.



후지: 감사합니다. 그것도 나로서는 코멘트할 수 없지만 뭐랄까(웃음). 제작에 관해서도 내가 지금 하고 싶은 음악을 형상화한다는 마인드는 계속 바뀌지 않아서. 그렇기 때문에 비교적 자각 없이 하는 일이 여전히 많은 거죠. 하지만 그 자각 없이 한 일이 鹿野さん이 말해준 것과 같은 평가로 이어지고 있다면, 그것 참 기쁜 일이라고 생각해요. 노리고 하려 해도 할 수 없기 때문에...... 어쩌면 하려고 생각하면 어느 정도는 할 수 있을지도 모릅니다만, 그래도 노리는 게 별로 맛이 없어서요.



▶알고 있죠.



후지: 그렇게 재주가 좋은 타입도 아니고요. 이런 음악을 하고 싶다, 이런 사운드를 하고 싶고 이런 거 부르고 싶다는, 그것조차도 별로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어요. 시대성 이런 걸 생각하면 요즘 이런 일을 하고 있는 사람도 없는 것일지도 모른다는 느낌이에요. (웃음) 그런데 막상 그런 곡을 내보면 신기하게도 새롭다는 말을 듣고 그래서 다행이다 이런 느낌. 이렇게 자각하지 못하고 있어요. 제 마음대로 제작하는 것을 계속할 수 있다는 것은 정말 감사한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조금 옆길로 비켜갑니다만, NHK의 '18제' 를 온타임으로 봤는데 온갖 BUMP OF CHICKEN 을 눈앞에 두었을 때보다 눈동자 속 BUMP OF CHICKEN 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눈물이 흘렀습니다. 잘도 저 상태에서 제대로 연주할 수 있었구나.



후지: 솔직히, 위험했었어요. (웃음) 일단 '18제'라는 프로그램의 취지로는 17세부터 스무 살까지를 '18세대' 라고 정의하고, 그 18세대 젊은이들과 함께 한 곡 퍼포먼스를 하자는 건데 실제로 제가 곡을 만들고 있을 때는 대상을 18세대로 한정하는 그런 감각은 딱히 없고 그냥 평소에 심장을 움직이고 여러가지를 마음으로 느끼고 사는 사람에게 긍정적으로, 혹은 돌아서서, 즐겁게 혹은 죽음에 대비하여, 혹은 껍데기처럼 살고 있는 1000명 한 분 한 분이 뭔가 생각이 있어서 저희와 함께 노래하고 싶다고 생각해줘서 저희와 함께 노래한다는 것에 굉장히 높은 동기부여를 가지고 모여주신 그런 사람들이랑 같이 부르는 거라고. 내가 생각했던 건 그것뿐이에요. 가사 내용에 관해서도 세대를 한정하는 그런 게 별로 의미가 없어서. 그냥 아무튼 저희랑 같이 부르고 싶다는 데 높은 동기부여를 해주는 사람들이 오니까 그게 일단 너무 좋아서. 분명 그들 각자 안에 우리와 아니면 표현할 수 없는 무언가가 있을 거라고, 그건 한 사람 한 사람 다른 것 같은데 그런 걸 안고 와주는 거예요. 개개인에게 생각과 이유가 있고, 한사람 한사람이 그 마음을 결판내려고 하고 있고, 그런 한 사람 한 사람이 다섯 번째 멤버로 참여해 줬을 때 생기는 건 뭘까? 이런 것밖에 관심이 없어서. ‘창문 안에서’는 그런 마음으로 만들었어요. 그래서 몇몇 사람들로부터 '창문 안에서' 라는 말은 “코로나로 인해 집에 갈 수밖에 없었던 데서 오는 거야?" 이렇게 얘기를 듣곤 했는데 그런 건 아니었어요. 물론 듣는 사람이 어떻게 들어주든 상관없지만 이 '창문 안에서' 라는 말은 옛날부터 제가 음악 제작을 할 때의 근본에 있던 것이었죠. 무슨 말이냐면 역시 거리 어디에 있든 집안이든 집 밖이든 학교 안이든 회사에 있을 때든 통학로든 퇴근길이든. 어디든 좋습니다만, 사람은 밖에 나갈 때, 자신만의 불가침 영역을 마음속에 가진 상태로 외출하고 있다고 생각하거든요. 그건 실내에 있다고 해도 마찬가지네요. 가족들과 함께 있을 때에도 그 가족과 전혀 공유할 수 없는 자신만의 불가침 영역을 가진 상태에서 많은 이야기를 하거나 혹은 말을 안 하거나 그렇게 지내고 그런 것 같아요. 그 하나하나가 가지고 있는 불가침 영역에 붙어 있는 창문을 노래하고 있는 거죠. 그 불가침 영역에서 세상을 들여다보는 듯한 그런 이미지예요.



▶고마워요. 후지가 음악을 만들 때라는 것은 자신 안에 있는 불가침 영역에 붙어 있는 창문으로 세상이거나 아니면 사는 것 자체를 들여다보면서 그렇게 곡을 만들고 있는 것 같은 이미지가 있다, 라고.



후지: 그렇습니다. 그래서 그건 저뿐만 아니라 다들 각자 가지고 있을 거예요. 그런 의미에서 "창문 안에서"라는 제목인데요. 누구나 나이가 들잖아요. 18세대보다 젊은 사람은 이제 18세대가 되고 현재진행형으로 18세대인 사람들은 이제 그것이 과거가 될 것이고, 이미 그 나이를 넘긴 사람은 그걸 가지고 살고 있고. 영혼의 본연의 자세란 그 사람의 상황에 따라 변해 가는 것이고, 물론 세상의 상태에 따라서도 옮겨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다만 불가침 영역만큼은 변하지 않는 거죠. 세상이 어떤 상황에서도 내가 몇 살이 되더라도 그 안에 있는 자신이 거기 붙어 있는 창문으로 세상을 보고 있다, 그것만은 변하지 않을 거예요. 그 시점에서 쓰고 있어요. 아마도, 저의 모든 곡들은 그렇거든요. 이 개념은 옛날부터 저의 작사활동에서 음악활동에서 근본적인 깊은 곳에 계속 있는 개념이거든요. 그래서 그걸 높은 동기부여로 공유해주는 1000명이 모여줬다는 건 아무래도 저한테도 너무 기쁜 일이고. 심지어 다들 엄청 연습해주더라고요, 각자 배경도 짊어지고 있는 것도, 그것을 통해서 어떤 기분을 어떻게 매듭짓고 싶은지도 사람마다 다르지만, 근데 다 같이 같은 곡을 한 목소리로 부르는 거죠. 누군가의 파트에 맞춰서 아니면 자신의 파트에 맞게 하면서 다 같이 한목소리로 부르는 거죠. 그렇게 생각하면, 역시 북받치는 게 굉장히 많았죠. 하지만 말이야, 그야말로 필사적이잖아. 개개인이. 그게 엄청 전해지는 거죠. 그러면 이쪽도 울 수 밖에 없는 거잖아.



▶나는 계속 울었어. 게다가 너무 기분 좋게.



후지: 그렇구나 (웃음)



▶ 프로그램 안에서 '지팡이가 될 만한 곡을' 라는 얘기를 했었는데 지팡이가 아니었네요.



후지: 정말? 지팡이가 아니라면 뭐예요?



▶지팡이라는 물체라기보다, 다리라든가 손이라든가 그런 감각에 가까움을 느꼈어요. 즉 각각의 신체, 혹은 마음의 일부가 될 수 있는 그런 악곡이라고 후지가 방금 말했듯이, 이 악곡은 BUMP OF CHICKEN의 본질론을 새로운 곡으로 표현한 것 같은데요. 그게 지금 이렇게 울려 퍼져서 개개인의 손과 발이 되어 있다는 게 대단하다고 생각했고 그게 지금 이 밴드의 상황이라는 걸 하나 보여주는 것 같기도 하고 멋진 일이라고 생각했어요. 말을 더하면 'SOUVENIR'도 기타 록 밴드로서 굉장히 참신한 걸 여러 가지 하고 있는 곡인데요. 동시에 2020년대 팝으로서 경쾌하게 느껴지는 악곡이 되기도 하고 라고. 그 의미도 담고 지금은 굉장히 알찬 작곡을 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고, 그리고 그걸 밴드로 잘 마무리하고 있구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후지: 감사합니다. 鹿野さん가 손처럼 느끼거나 발처럼 느껴주는 것은 매우 기쁘고 감사하고, 물론 그렇게 느끼게 하는 것은 자유롭지만, 근데 악곡이라는 게 어디까지나 지팡이가 되는 것이거든요. 그러니까 이 곡이 내 다리구나라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면 "무슨 소리야? 너는 네 발로 서 있잖아. 라고 저는 말해주고 싶어요. 제대로 내 손으로 그 지팡이를 받치고, 자신의 발로 서 있잖아, 라고. 기억할 수 있다면, 그걸 기억해줬으면 좋겠어. 물론 우리의 이 곡을 지팡이로 골라줘서 고맙고 분명 아직 도움이 될거라 생각하니까 가지고 있었으면 좋겠어. 너에게 도움이 될때가 있으면 좋겠다고 진심으로 생각하지만, 그 지팡이가 나올 차례가 없으면 안 되고, 그게 나을 수도 있지. 그 정도 마음이에요. 그만큼 개개인이 진지하게 살고 있다는 것을 그 1000명에게서 느꼈고 「be there」 의 중간부터 그 곡을 세트리스트에 넣을 수 있었는데 「be there」 에서 본 손님 한 분 한 분에게서도 느꼈어요.



▶고마워요. 여기서부터는 어떻게 가나요? 당분간은 제작이 계속되는 느낌?



후지: 그렇습니다. 일단 눈앞의 제작에 몰두하는 느낌입니다. 아까 챠마가 말했듯이 지금 하고 있는 곡은 좀 어려워서요. 몇 번이나 나왔는데 그렇게 어려워?



마스: 어려워. ‘음' 이렇게 돼.



▶그렇구나(웃음)



마스: 하지만 아까 챠마가 말한 대로 아마 음원을 들어도 아무도 그런 어려운 곡이라고 생각하지 않을 거야. '음..이게 왜 안 되지?‘



나오이: 네. 오히려 "너 이거 왜 못해?" 라고 생각할지도 몰라 (웃음)



마스: 그래도 돼. 요점은 자신들이 그렇게 단단히 곡을 마주보고 임하고 있다는 것이고 그런 도전을 하게 해주는 곡이 지금 눈앞에 있다는 거니까. 정말 훌륭한 곡이기 때문에 완성 되었을때는 모두가 들어줬으면 좋겠어요.



▶기대하고 있겠습니다. 또 지속적으로 세상에 나왔으면 좋겠고 또 이야기 들려주세요.



후지: 네, 감사합니다



▶좋은 여름 보내세요. 장시간 고마워요. 수고하셨습니다!



일동: 수고하셨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