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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MP OF CHICKEN MUSICA 2024 10月号 번역 (4)

8 7 2024. 10. 17. 16:24

▶: 인터뷰어

BUMP OF CHICKEN MUSICA 2024 10月号 번역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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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MP OF CHICKEN MUSICA 2024 10月号 번역 (3)

▶: 인터뷰어 BUMP OF CHICKEN MUSICA 2024 10月号 번역 (2) https://87boc.tistory.com/m/61 BUMP OF CHICKEN MUSICA 2024 10月号 번역 (2)▶: 인터뷰어 -: 후지와라 BUMP OF CHICKEN MUSICA 2024 10月号 번역 (1) https://87boc.tistory.com/m/6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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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THE LIVING DEAD」 릴리스 반년 후, 2000년 9월 20일, 「ダイヤモンド(다이아몬드)」라고 하는 싱글로 메이저 데뷔를 해, 한층 더 「天体観測(천체관측)」, 「ハルジオン(하루지온)」 3편의 싱글을 낸 후 오리콘 차트 1위에도 오른 메이저 첫 앨범입니다.

후지(후지와라 모토오, Vo.&G.): 그렇구나, 오리콘 1위 했구나.

히로(마스카와 히로아키, G.): 하지만 이때, ‘메이저 1집 앨범’이런 것은 의식하지 않았어. ‘메이저의 첫번째 작품이다!’ 이런 얘기는 전혀 안 했고.

후지: 응, 보통 3집이라는 의식이었어.

히로: 그래, 3집째라는 의식이 강해서. 확실히 시캇페(인터뷰어)가 말하는 대로의 전개이긴 했지만, 우리는 메이저라든가 그런 어식이 박해서

▶그렇게 크게 환경이 바뀐 것도 아니었던가요?

히로: 음... 하지만 나열되어 있는 곡을 보면, 레코딩의 환경은 완전 바뀌었을지도.. 굉장히 좋은 방향으로 바뀌고 있는 앨범이네요. 제대로 된 환경이라고 하면 인디 시절에게 실례지만, 제대로 시간을 가져서, 한 곡 한 곡을 마주하면서 녹음을 하기 시작한 거네요.

후지: 뭐, 「THE LIVING DEAD」 과는 반대였으니까 (웃음)

히데(마스 히데오, Dr.) 실제로, 싱글도 그렇지만, 곡마다 녹음을 했었으니까.

후지: 이 무렵부터, 보다 1곡 1곡의 작업이 되어 갔었지. 특히 「jupiter」의 제작에 관해서는, 「THE LIVING DEAD」 의 반동도 있었고 정말 한 곡 한 곡에 시간을 들여서 만들어간 느낌이 있어요.

히데: 개인적으로는 3집이 되어서야 겨우 내 악기를 처음 샀다는 게 굉장히 기억나. 먼저 스네어를 샀어.

히로: 어? 그래도 그 전부터 스네어는 가지고 있었지 않아?

히데: 그건 주운 걸 그대로 계속 쓰고 있었으니까.

후지: 너무 멋있다. ‘주운 스네어를 계속 사용했어’ 라니.

나오이(나오이 요시후미(챠마), Ba.) 말하는 건 빌리 조(Green Day) 같으니까

히로: 펑크스의 발언(웃음)

히데: (웃음). 그런데 이때 드디어 내가 직접 산 거지. 딱히 메이저라서 그런 의식은 없었던 것 같은데, 악기를 살 수 있는 돈이 있고, 지식도 많아지고, 레코딩으로 할 수 있는 것의 폭이 늘어난 앨범이었던 것 같아요. 그렇다고 생각했던 대로 되고 있다던가 그런 건 아닌데. 다만, 프로듀서와 짝을 지어주는 것도 처음이었고, 새로운 경험이 많아서 재미있었어요

▶ 「天体観測」이 생겼을 때 '이 곡은 대박이야!' 라고 스탭진을 포함해서 분위기가 고조되었고, 굉장히 소중하게 녹음되어 갔던 기억이 있고, 실제로 완성된 곡에 대해서도 '이 곡은 말도 안 돼, 열심히 해서 성공시킬 거야!'라고 팀 모두가 다짐했던 것도 굉장히 기억이 납니다. 현실적으로 큰 결과를 냈고, 지금에 이르기까지 BUMP OF CHICKEN의 대표곡이 되고 있는 악곡이 이때에 생겨난 것은, 되게 큰 일이었던 것 같아요.

후지: 하지만, 지금 얘기해준 그 분위기랄까, 대박이다, 대박이다!라고 말한 건 스태프들뿐이고. 저희들은 어떤 곡에 대해서도 텐션이 일정했고, 이런 식으로 말하면 식은 느낌으로 생각하실 수도 있겠지만, 그게 아니라, 어느 곡에 대해서도 차이는 없고.

히데: 그래, '이건!!' 이런 건 없었어요.

히로: 힘쓰는 자세는 같으니까.

나오이: 참고로 나는, 이제 「ダイヤモンド」시점에서 "이건 됐다!" 라고 되어있었어 (웃음)

후지: 그냥 기억나는 것은, 메이저 레이블의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한다는 것은 이런 것이구나 라고, 그 공기 같은 걸 처음 알게 된 타이밍이었던 것 같아요. ‘이 곡을 이런 식으로 세상에 전파하자' 같은걸 진지하게 생각해주는 사람과 처음 만났고, 저희들의 음악에 대한 대처법이나 자세 같은 것은 「FLAME VEIN」, 「THE LIVING DEAD」와 전혀 다르지 않지만, 우리가 만들어낸 악곡에 대해서 주변 사람들이 진지하게 생각하고 움직여준다는, 그런 상황을 인식해 갔다고 해야 하나.

▶그로 인해 송라이터로서 무엇이 달라졌나요?

후지: 어쨌든 순수하게 곡을 원하는 레코드 회사 사람으로부터 (웃음). ’새로운 곡 준비됐어?‘ 이런 전화 같은 게 오게 돼서. 그때까지 그런 적 없었는데. 그야말로 「FLAME VEIN」의 곡들은 마감도 아무것도 없고, 자기가 쓰고싶을때 썼던것들을 정리한 앨범이었기 때문에, ’이때까지 써야해!‘ 이런 고생은 전혀 느끼지 못했는데,  「THE LIVING DEAD」 웃음이 나올정도로 그것과는 정반대였기 때문에 아무런 비교도 되지않지만(웃음), 「jupiter」 때 처음으로 저희가 메이저 레이블 분들과 함께하게 된 앨범이라서요.

그때 저는 처음으로, 레코드 회사 사람으로부터 ’후지군, 곡 썼어?‘ 라는 연락이 엄청 오고, 그런거구나.. 라는것을 알게 됐어요(웃음). ’음악을 생업으로 삼는다는 게 이런 거구나‘라는 걸 느끼고 있었어요. 굉장히 기억나는게, 「ハルジオン」의 가사를 전혀 쓰지 못해서 끙끙거리고 있을때, 챠마가 후지록 가자고 했었어요. ‘작곡 잘 안 되면 기분전환하러 후지록 가자'고.

나오이: 그랬지

후지: 챠마와 히데는 매년 후지록에 갔었어요. 그런데 나와 히로는 그것을 보면서, 사실은 관심 있으면서, ’아니, 우리는 별로‘ 같은 느낌으로 있어서 (웃음). ’우리, 하코네 갈 거라‘ 이런 느낌이었어요.

▶맞아, 괜히 하코네에 갔었지, 그 때.

나오이: 매번 후지록은 권유했지만

히로: 뭐 우리들은 단순히, 어떻게 가는지 몰랐을 뿐이지.(웃음)

후지: 그래, 어떤 옷을 입고 가면 좋을지도 몰랐으니까 (웃음). 근데 이때 차마가 '후지군, 고민하고 있으면 같이 가자’ 이렇게 해줘서. 그래서 확실히, 챠마랑 히데가 먼저 가 있고, 나랑 히로가 뒤에서 쫓아갔나? 그렇게 후지록의 회장에 도착했을 때 레코드 회사 사람으로부터 전화가 와서,
‘가사 썼어?’ 라고 해서. ’아니, 못 써서요‘ , ‘너 지금 어디에 있어?’ ‘후지록이요’ ‘왜 후지록 같은 거 가!’ 라고 혼나고. 그래서, ‘혼나기도 하는구나!’ 하면서 깜짝 놀라기도 했어요(웃음)

나오이: 가게 해줘. 뮤지션인데 (웃음)

▶그건 동의해(웃음), 그렇지만, 그때 레코드 회사 사람들한테는 이 밴드를 소중하게 생각하기 때문에 이런 사정이 있었을 거라고 생각해요. 현실적으로 「天体観測」이 크게 터졌기 때문에, 그 다음에 내는 싱글이라는 게 굉장히 중요한 타이밍이 되는 거고. 거기서 「ハルジオン」 가사에 대해 엄청나게 재촉이 갔다는 것은 굉장히 납득이 가는 일이라고 생각해요.

후지: 그렇지, 레이블 측으로서는 분명 그런 것 같아요. 그런데 우리들은 그런건 전혀 생각하고 있지 않으니까(웃음), 그만큼 열심히 생각해줬겠지 싶은데. 그래서 좋아하는 것을 생업으로 하는 건 그런 거구나라는 생각을 굉장히 많이 하게 된 시기였어요. 나는 곡을 템포 좋게 쓸 수 있는 타입도 아니구나 라고 생각하게 된 것도 이 시기고. 그래도 여전히 음악은 매우 좋아하니까, 멋진 아이디어라든지, 이렇게 하고 싶다는 욕망은 4명 다 너무 있고. 지금 들으면 "아, 이렇게 하고싶었구나" 라고 하는것이 굉장히 전해지고, 동시에 '그렇게 못 해서 속상했구나'라는 것도 전해지고. 그래서 이 앨범도, 여전히 억울한 게 많아요

▶ 「天体観測」이나 「ハルジオン」 같은 명곡이 들어가 있는 동시에 첫 번째 곡인 「Stage of the ground」는 당시에 잠깐 동안, 라이브 오프닝 송으로 불리게 된 곡이자 하뉴 유즈루(일본의 피겨 스케이팅 선수)씨가 너무 좋아해서 경기 전에 자주 듣는다는 것도 유명한 이야기고요.

나오이: 영광입니다!

후지: 엄청난 영광입니다!

▶엄청나게 밸런스가 잡힌 3집 앨범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당시 라이브로 「POKISTA21」이라는, 「아카사카 BLITZ」에서 「Zepp Tokyo」까지의 9회장 13공연을 돌고 있었습니다.

후지: 「아카사카 BLITZ」인가. 열정 엄청나네.

히데:「BLITZ」도 「Zepp Tokyo」도 이제 없으니까

▶그리고 그 후, 시모키타자와의 라이브 하우스씬의 동료이기도 했던 syrup16g, BURGERNUDS, 허클베리핀과 4맨으로, 「BAUXITE page1」이라는 자신들만의 기획 이벤트를 센다이, 카와사키, 고치 등 3곳에서 개최하고 있었습니자. 고치에서 가다랑어를 손질해서 다같이 먹기도 했지요.

후지: 먹었네요. 그 후, 함께 불꽃놀이도 했어요. 손에 들고 있는 불꽃놀이가 팩에 들어서 팔잖아요. 그 팩에 안경이 들어있고, 그걸 통해서 불꽃놀이를 보면 빛이 분열되어 보인다는 것이 있었는데, 그렇게 안경 뺏기 놀이가 되어서. 아주 좋은 밤이었어요.

▶그 당시에 라이벌 의식이 얼마나 있었나요?

후지: 라이벌 의식은 없었어요.

나오이: 정말로 제로. 저희가 멋있다고 생각하는 사람들과 함께 라이브를 할 수 있어서 기뻤고, 몇 번이나 타이반(합동 라이브) 하고 있었으니까, 사이도 좋고. 정말 기쁘다, 기쁘다! 라는 마음이었던 것 같아요.

후지: 모두 멋있고, 좋은 애들이고, 얘네들이랑 같이 다니면
최고다라는 마음으로 같이 다닌 거였으니까. 저희도 라이브 하는데, 다른 밴드의 라이브를 보는 것도 즐거웠어요.

나오이: 허클이 해준 「アルエ(아루에)」, 너무 좋았어.

후지: 아아! 굉장히 대담한 어레인지의

나오이: 그래. 완전 허클표가 되어있던 「アルエ」

후지: 우리들과 정반대의 어레인지였어요. 그거 좋았어. 기뻤어.

▶히데에게 있어서 「jupiter」은 어떤 앨범인가요?

히데: 여러가지 챌린지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것과, 그리고 아마, 이쯤이 마지막이 아닐까, 스튜디오에서 다 같이 어레인지를 한다는 게.

후지: 아, 그렇구나!

히에: 이 다음부터, 후지군이 본격적으로 QY(YAMAHA의 하드웨어 시퀀서)를 사용하기 시작했다고 생각해요.

후지:그렇지

히데: 그전에도 「ランプ(램프)」같은 건 QY로 들려준 것 같은데

후지: 「ダイヤモンド」와 「ラフ•メイカー(러프 메이커)」도 그랬을 거야.

히데: 맞아, 맞아. 그러니까 그 방식이 딱 혼재했던 시기였던 것 같아. 「THE LIVING DEAD」와 비교해서 시간을 잡았기 때문에, 스튜디오에서 실제로 소리를 내면서 다같이 소통하고, 어레인지를 만들어간다는 작업이 재미있었을 때네요. 지금도 그런 때가 가끔 있는데

▶챠마(나오이)는 당시를 회상하면, 어떻습니까?

나오이: 이 타이밍이, 원래는 메이저에 가서 가장 많이 바뀌는 시기인 것 같은데, 제작진 중에 인디 혼(魂)을 굉장히 아끼는 분이 계셔서. 그래서 악기 반입도 저희들끼리 했었고, 기술적인 것에 관해서도, 예를 들면 프로툴스(디지털 오디오 워크스테이션 플랫폼)같은 것은 사용하게 하지 않거나.

히데: 맞아. 스튜디오에는 있었지만.

나오이: 그것이 불만이었던 것은 전혀 아니고, 오히려 그런 부분을 굉장히 아껴주신 것은 다행이라고 생각합니다. 생활이라는 면에서는 사실 별로 다르지 않았고. 히데가 말했던 것처럼 시간을 낼 수 있게 되었다던가는 있었지만, 하는 거는 별로 안 바뀌더라고요. 리허설에 관해서도, 이때는 아직 스가모(巣鴨)에서 했었는걸.

후지: 그렇지, 스가모에서 리허설 했었지

나오이: 심지어 그 스튜디오도 스탭이 받아주는 것은 아니고

히데: 보통 내가 예약했어

나오이: 아, 히데가 잡아줬지. 내가 기억하는 것은, 그 스가모 스튜디오에서, 생일선물로 후지군에게 「ベンチとコーヒー(벤치와 커피)」가사를 받았어요. 그게 이제 진짜 너무 좋아서! 손으로 쓴 가사를 받아서, 스튜디오 밖에 나가서 나무가 있는 곳에 앉아서 읽고, 흐느껴 울었어요. 지금도 물론 갖고 있습니다.

▶이 앨범에는 후지와 히로의 공동작인 「キャッチボール(캐치볼)」이라는 곡이 들어있습니다. 이것도 당시에 어땠는지.

후지: 이 곡은, 아까 이야기한것처럼 히데와 챠마가 굉장히 가볍게 여름페스같은데 가고있는 반편, 저와 히로는 사실 흥미있어도 ‘아니, 우리 하코네 갈 거라 바빠서’ 라든가 ‘배드민턴 칠 거라 바빠서’ 이런 말을 했던 시기가 있어서 (웃음)

히로: 그래서, 정말 공원에 가서 배드민턴 같은 거 치거든요.

후지:그런 시간이 자주 있었어요. 우리집에 히로가 놀러와서 같이 기타치니까 신나서, 그냥 묵는다든가. 그래서, 한 정거장 걸으면 스튜디오가 있었기 때문에, 거기에 기타 들고 같이 가기도 하고. 사실 우리는, 그때까지 그다지 거리에 있는 스튜디오를 사용해 본 적이 없었어요. 옛날부터 챠마 집에서 연습을 했고. 그래서 거리의 스튜디오를 저희들끼리 빌려서, 기타 가져가서 이것저것 연주하고 있을 뿐이었어요. 그래도 즐거웠어요. 그래서, 밤 늦게 또 둘이서 선로변을 걸어서 우리집에 돌아오고 그런. 그 당시에, 히로가 상당히 의욕이 넘쳐서.

히로: 그래, 아티스트같은 기분이 되기 시작했다고나 할까.

나오이: 뭐, 이때는 이미 아티스트였지만 (웃음)

히로: 그래도 (웃음), 그렇지만 기분이 들뜨기 시작했다 이런 사실을 후지군에게 전했다고 생각해요.

후지: 그래서 '이런 거 좋지, 저런 거 좋지‘ 이러면서 둘이서 리프를 만들어가고, 그러다가 라라라 정도의 느낌으로 노래를 시작해서. 히로는 아마 내가 가사를 쓰는 줄 알았겠지만.

마스: 응, 맞아.

후지: 하지만, 내가 히로에게 ’좀 써봐.‘ 라고 한거야. 그러면, 히로는 가사 같은 건 써본 적이 없으니까, ’알았어. 그런데 뭐부터 써야 해? 후지군은 항상 어디서부터 써?‘ 라고 해서. 나도 그렇게 구체적으로 생각해본 적이 없었기 때문에 몰랐지만, ’예를 들어 오늘 너무 기분이 좋으면, 오늘의 일을 쓸 수 있지 않을꺼?’ 그랬더니, 히로가 ‘스튜디오에 갔다가 4시 쯤 돌아가는것 같은 가사를 썼어’ 라고.

나오이: 뭔가 좋은 느낌의 출발이잖아.

후지: 확실히 말야, 거기에 뭔가 계속되는 것이 있으면 좋았겠지만, 히로의 경우는 거기서 이미 멈춰버렸으니까. 스튜디오에서 집으로 돌아온지 얼마 안 되어서 완결이 났어 (웃음).

히로: 거기서 이제, 속수무책(웃음).

후지: 아직 A멜로의 절반도 부르지 못했는데(웃음). 그래서 '요점은 그게 재밌었다는 거지?' 그랬더니, ‘그래, 즐거웠어!’ ‘기분이 너무 좋아서 기타로 같이 소리를 내고 그랬잖아. 그럼 그 광경을 쓰면 될 것 같네. 히로는 그때 어떤 기분이었어?’ 같은 느낌으로 내가 히로를 인터뷰하면서 가사를 써가던 기억이 나요 (웃음). 뭔가, 내가 '이런 거 어때?' 라고 쓴 것에 대해 ‘좋아, 그럼 이런 느낌 어때 라고 히로가 제안해서 오는 게 너무 오묘해서.

히로: 하하하하하

후지: 나는 그것을 필사적으로 알아내야겠다고 생각해서 하고 있었는데, 그런데 그때 문득, 이 둘의 대화라고 할까, 이 작업 자체가 재미있을 것 같아서. 그래서 두사람의 희귀한 여행길과, 히로의 오묘한 공을 열심히 캐치하는 저를 썼다는 느낌이었습니다. 그래서 완성된 게 「キャッチボール」의 가사네요. 그것을 보고 히로가 "이거야!" 라고 말했던게 기억나요 (웃음)

히로: 그래서 그대로 거의 잠도 안 잔 상태로 하코네에 갔었어. 내가 '좋아, 이거야!' 하고, 그냥 둘이서 하코네에 갔어요 (웃음)


▶「jupiter」 에서 약 2년 반이 지나 발매된 4번째 앨범인데요, 이 「ユグドラシル(유그드라실)」 라는 작품에서, 밴드의 스케일도 포함해서 여러 가지가 드라마틱하게 바뀌었다고 생각합니다. 앨범의 세계관도 굉장히 뚜렷한 윤곽을 갖게 되었고, 음악적으로도, 초기부터의 분함이 많이 해소된 것은 아닐까, 라고. 게다가 이 앨범에 들어있는 「sailing day」는, 자신들이 매우 좋아하는 「ONE PIECE」극장판의 주제가로 써내려간 악곡으로, 처음으로 타이업이라는 것과의 대면도 시작되어 간 작품이기도 합니다. 그런 다음에, 이 앨범의 투어인 「MY PEGASUS」 의 파이널은 「PEGASUS YOU」로 마쿠하리 멧세 2days로 개최되며, 아레나 밴드가 된다는 스케일업도 이루었습니다. 이 시기를 되돌아보면 어떤까요?

히로: 확실히 라이브의 스케일감이 커져가던 시기라고 생각합니다만, 개인적으로는 후지군이 만들어가는 곡에 저의 실력이 따라가지 못하고 있다는 것을 강하게 느끼고 있던 시기라.

▶그 고뇌는 당시에도 말했었죠.

히로: 네. 사실 라이브에서도 잘 칠 수가 없었고. 그래서 처음의 무적감으로 생각하면, 이때쯤부터, 또 다른 단계에 들어갔던 것 같아요. 그런 와중에도, 후지군이 만들어내는 곡은 물론 좋고, 녹음 일정은 정해져 있고, 라이브도 정해져 있고... 그러니까 솔직히, 고민하던 시기이긴 한데. 그런 건 뮤지션이라면 누구나 있다고 생각하고, 그것을 하나하나 극복해 나가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만, 당시에는 그런 것을 자각하지도 못했고, 그냥, 그냥, 그 안에 있었던 것 같아요. 그리고, 라이브에서도 여러가지 음색을 사용할 필요가 엄청나게 있었던 시기여서. 그래서 앰프도 엄청나게 샀고, 기타도 이펙터도 엄청 샀고. 그래도 그것이 잘 안되거나(웃음). 발밑의 스위칭 시스템을 새롭게 짜 본다든가, 그래도 그게 안 되거나 (웃음). 정말 여러 가지를 시도하던 시기이기도 했던 것 같아요. 지금 돌이켜보면, 그런 성장의 시기이기도 했겠지만요

▶거기서 갈등을 안고 여러가지를 시험해, 자신과 마주한 시기를 보냈기 때문에, 지금이 있다고 생각하는 점도 있나요?

히로: 물론 그렇습니다. 필요한 작업이었던 것 같고. 딜레이 시스템이라든가 코러스의 이펙트라든가, 그 밖에도 정말 여러 가지가 있는데 그런 것들을 조금씩 공부해서 라이브에서 쓰기 시작한 시기이기도 했죠.

나오이: 「ユグドラシル」 은 그 어느 때보다 1곡 1곡에 들일 시간을 많이 가졌기 때문에, 4명 모두 제작에 몰두할 수 있었던 시기였다고 생각합니다. 제작 스타일에 관해서는, 저는 어쨌든 히데랑 같이 리듬을 잡고 있었다는 건 기억나요. 악곡의 프리 프로덕션 (레코딩을 할 때, 그것을 원활하게 진행하기 위한 사전 준비)을 둘이서 스튜디오에 들어가는 일도 꽤 있었고.

히데: 맞아.

나오이: 집에서 혼자서 베이스라인을 생각하고 있어도 막혀서, 히데가 지금 어떻게 생각하고 있는가 하는 것을 듣고, 같이 생각도 하고. 당시에는 프로툴스 같은 것도 서로 가지고 있지 않았으니까

히데: 맞아. 그러니까 실제로 스튜디오에서 둘이서 음을 맞추면서 생각해 그렇게 생각한 것을 ‘후지군, 이거 어때’ 라고 하면, '별로' 라는 말을 듣기도 하고(웃음). 그 반복이었어요. 사전에 나와 차마의 둘이서 너무 생각해 버리면, 후지군에게 들려줬을 때에 ‘아니야’라고 하는 일이 일어나기 쉽지만.

나오이: 하지만, 우리 둘은 당시, 그거 말고는 어쩔 수가 없었으니까. 둘이서 생각한 것이 실패했다고 해도, 그 작업을 함으로써 곡의 이해도는 정말 깊어지게 되고. 둘이서 생각한 것은 거의 사용되지 않았지만, 그런데 다 안 쓰이는 건 아니고. 그렇게 해서 몇십 가지, 몇백 가지같은 느낌으로 저도 생각하고 프리프로에 가게됨으로써, 예를 들어 후지군이 '차마, 베이스 좀만 더 들려줘' 라고 했을 때 제 안에서 꺼낼 수 있는 서랍을 많이 늘린 시기였어요.

후지: 챠마는 「ユグドラシル」 무렵부터 코드에 대한 소리의 배치법에 민감해졌다고나 할까. 그러한 시점은 「jupiter」 까지는 그렇게 많지 않았어요.

나오이: 없었지. 소리가 나는 것 같은 느낌도 없었고

후지: 「jupiter」 까지는 '그 베이스의 소리, 코드와 부딪히고 있어‘라고 내가 지적하는 일이 꽤 있었지만, 「ユグドラシル」에서는 반대로 챠마 쪽에서 ’이거 괜찮아? 여기 안 맞지 않아?‘ 이런 식으로 물어보게 되고

나오이: 나 「スノースマイル(스노 스마일)」들었을 때 겁먹어서. 이거 ‘사이먼&가펑클’(록 그룹) 같은 곡이잖아!' 라고 생각해서, 저는 저의 인생에 있어서 ‘사이먼&가펑클’ 같은 타입의 완전 양질의 팝을 할 거라고는 생각을 못했거든요. 요점은, 후지군의 안에 있는 양질의 팝들이 나왔을 때 쫄았다고 할까, 좀 겁이 났단 말이야. 「車輪の唄(자전거의 노래)」 들었을 때도 진짜 놀랐고... 히로의 갈등과는 또 배경이 다를지도 모르지만, 지금까지의 무엇인지 모르지만, 절대적인 자신감이라기 보다는, 약간 치는 게 무서워, 같은 느낌이 들었던 시기였어요. 근데 하는 게 싫다는 게 아니라, 좋아하기 때문에 제가 생각하는 것을 표현하지 못하고 무서워지는 상황이니까, 그러면 이제 내 나름대로 열심히 할 수밖에 없겠다 싶어서. 그래서 책을 읽기도 하고 음악을 공부하고, 히데에게도 '나 이제 전혀 프레이즈가 생각나지 않아서 같이 해줄 수 있을까?‘ 그래서 도움을 받아서, 그렇게 그럭저럭 하던 시절이죠

▶히데도 이 앨범쯤 부터, 악곡이라는 높은 벽이 본인 앞으로 다가와서, 거기와 대치해 가게 된 감각이 있습니까?

히데: 그렇습니다. 역시, 거기서 후지군에게 '아니야' 라는 말을 듣는 것은 제 소유물만으로 하려고 해도 안 된다는 것이에요. 내가 할 수 있는 틀 안에서 하려고 하면, 그건 아닌 건 당연한 거고. 그러니까, 제가 할 수 있는지 없는지에 관계없이, 그 악곡이 요구하는 것을 해야 한다고 할까요, 그것을 목표로 해 가지 않으면 악곡이라는 것은 성립하지 않는다고 하는... 뭐, 그것을 깨닫는 것은 더 앞섰지만 (웃음). 근데 그런 걸 느끼기 시작한 시기이긴 했어요. 정말 할 수 없는 일들이 너무 많았어요. 예를 들어 「sailing day」라면, 지금은 우리 중에서도 그리 빠르지 않은 카테고리가 되겠지만, 당시의 저는 이 템포로 8비트를 못 쳐서. 「スノースマイル」도 뛰어오르는 리듬이라는 말을 들어도 '... 뛴다는 게 뭘까?' 같은 상태였고.

나오이: 그렇다. 뛰는 게 뭔지 몰랐지

히데: 그때마다, 후지군이 친절하고 정중하게 '이 CD를 들어라' 라고 말하면서 건네주기도 하고(웃음). 후지군 뿐만 아니라 프로듀서도 그렇지만, 그렇게 키워줬다고 해야 되나. 그러니까 레코딩에 이르는 것이 쉬운 일은 아니었지만, 저의 틀에 관계없이 곡이 원하는 것을 하고 싶으니까, 이런 시기가 필요했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요.

▶정말로 훌륭한 앨범, 훌륭한 악곡들입니다만, 이 당시에 들었던 것으로 치면, 후지도 좀처럼 곡을 할 수 없는 시기였지요.

후지: 그렇네요, 「jupiter」 부터 계속. 그 때는, '곡 됐어?' 라고 재촉받는 것에 대한 공포가 대단했어요. 「ロストマン(로스트맨)」을 한 9개월을 못 썼어요. 그건 이미 트라우마네요 (웃음)

▶ 그런 의미에서는 전원이 굉장히 싸우면서, 결과적으로 머릿속에서 울리는 것과 현실적으로 만들고 있는 음악의 갭이 지금까지보다 적은, 필연적으로 명곡들만 모인 앨범을 만들어낸 것 같은데요.

후지: 그렇군요. 레코딩적으로는 「jupiter」에서 배울 수 있었던 게 굉장히 많아서. 「ユグドラシル」에서는 배운 것을 살리면서, 새로운 공부도 하면서 이런 느낌으로 할 수 있었으니까. 그래서 「ユグドラシル」 그 무렵부터 드디어 뇌속의 이미지와의 괴리가 그다지 없는, 완성형이 원래 생각했던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는 느낌이 드네요.

▶그 거리가 줄어든 것은, 필요한 게 크게 갖춰졌다고 느꼈기 때문인가요?

후지: 그렇죠. 역시 기뻤어요. 기타 소리가 좋다든가, 베이스 소리, 드럼 소리가 제대로 들린 다음에 제대로 위의 것이 울려 오는 상태를 겨우 만들 수 있었기 때문에. 위에 있는 것도 이렇게 저렇게 음을 넣었는데도 제대로 완성형을 상상하면서 만들 수 있었고. 엔지니어와도 처음의 협의가 잘 되어가니까, 적당한 곳에 적당한 소리를 두고 있다는 감각이 있어서...그것이 굉장히 기뻤습니다. 만드는 곡의 폭이랄까요, 그게 퍼진 시기이기도 했으니까. 「スノースマイル」이런 거 나오거나, 「車輪の唄」라든가 「同じドアをくぐれたら(같은 문을 빠져나가면)」 같은 게 나오거나. 아까 세 명이 말한 것처럼, 아마 「jupiter」까지는 저희들이 너무 좋아서 카피해온 것이라던가, 그런 지식만으로 비교적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그게 「メロディーフラッグ(멜로디 플래그)」쯤부터 의심스러워지는데.「ベンチとコーヒー(벤치와 커피)」라든가 「ベル(벨)」이라든가, 「ダンデライオン(단데라이온)」도 수상한가...그렇게 생각하면, 그때까지도 꽤 수상한데(웃음)

▶(웃음).

후지: 다만, 아까 히데가 말했던 것이 정말로 그랬다고 생각하지만, 「ユグドラシル」은, 지금까지의 저희들이 가지고 있는 무기만으로는 재현할 수 없는 것이었다고 생각해요. 그래도 곡은 나와버리니까, 어쩔 수 없잖아. 역시 우리는 우리가 하고 싶은 음악에 대해서 좀 더 자유로워야 하고, 그런 곡을 세상에 내놓는 것에 대해서 더 용감해야 하고. ······동업자인 사람으로부터 말이야, 「スノースマイル」 냈을 때는 솔직히 충격이었다고, 저런 발라드를 BUMP가 해주지 않았으면 했다 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었어요. 그런데 그런 말을 들어도 되냐는 얘기야. 저희들 안에서 나오는 거니까, 그것도 하는 게 제일 맞잖아. 게다가, 「スノースマイル」도 아직 어떻게 하면 좋을지 모르는 채 열심히 레코딩하고 있는 과도기 같은 시기였으므로, 상당히 비뚤어진 사운드의 접근법이 되어 있어서, 그게 오히려 의문의 매력이 되는 것 같은데요.

그렇게 나온 것은 무조건 이 넷이서 표현한다는 것이 중요하고, 그렇기 때문에 주변의 부정적인 반응에 대해서도 '시끄러워!' 라고 말할 필요가 있었던 시기였던 것 같아요. 주위에서 요구하는 ‘BUMP OF CHICKEN스러움’같은 것이 있다고 해도, 저희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고 자유롭게 하고 싶은 것을 열심히 할 뿐이니까. 「jupiter」 의 시절에도 「THE LIVING DEAD」의 시절에도 그러한 갭에는 괴로워해 왔지만, 그게 극에 달했던 시기이기도 했던 것 같아요. 인터뷰에서도 라이브에서도 ‘정말 하고 싶은 것을 열심히 하고 있을 뿐이야, 그게 꼭 BUMP OF CHICKEN에게는 필요한 일이야’ 라고 굉장히 말했던 것 같고. 그런 열 같은게 같이 들려왔고, 이 앨범의 곡들을 보고 계실 거예요. 실제로 무대에 서서 그때의 손님들과 함께 만들어가는 라이브라는 것을 거듭하면서, 점점 그런 말을 하는 것도 줄어들었는데. 그게 왜냐하면 역시 손님과 음악을 더 믿을 수 있게 되었기 때문이에요. 일일이 입으로 말하는 것보다, 그냥 좋은 곡을 내 삶의 전부를 담아 만들고, 연주하고, 그것이 반드시 해야 할 일이라고 하는, 그쪽 방향으로 굉장히 피를 튀겨 가는 것도 여기서부터예요. 당시에는 아직 알기 쉽게 말로 말하는 수단밖에 가지고 있지 않았다고 할 뿐이지, 지금은 그런 게 다 음악에 빠져 있어요.


(5)에서 계속