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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MP OF CHICKEN official website
BUMP OF CHICKEN オフィシャルサイ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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自分の知らない人にも、バンドを知ってもらえるようになってきた
내가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밴드를 알릴 수 있게 되기 시작했다
――今回は1999年に『FLAME VEIN』が出た後、バンドの状況が徐々に変わりつつある中で増川さんがどんなことを思っていたか、というところからお話を聞かせてください。
――이번에는 1999년에 『FLAME VEIN』이 나온 뒤, 밴드의 상황이 서서히 변해가던 가운데 마스카와 씨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었는지, 그 부분부터 이야기를 들려주세요.
増川:あの頃はちょうど大学に入った頃ですね。
마스카와: 그 무렵은 마침 대학에 들어갔을 때네요.
浪人していたんで、受験で合格して、4月から学生になった。
재수를 했기 때문에 입시에 합격해서 4월부터 대학생이 됐어요.
すごく嬉しかったですね。
정말 기뻤어요.
ただ、もちろんバンドメンバーには素直に「やったよ、ありがとう」って言えたんですけど、ちょっと後ろめたい気持ちもありました。
다만 물론 밴드 멤버들에게는 솔직하게 “해냈어, 고마워”라고 말할 수 있었지만, 조금 떳떳하지 못한 마음도 있었습니다.
僕がバンドを滞らせちゃっていた立場だったんで。
제가 밴드 활동을 정체시키고 있던 입장이었으니까요.
でも、『FLAME VEIN』も出たし、新しい大学時代も始まったし、どうなっていくんだろう、みたいな感じでした。
그래도 『FLAME VEIN』도 나왔고 새로운 대학 생활도 시작됐으니, 앞으로 어떻게 되어갈까, 하는 느낌이었습니다.
――大学生活とバンドのバランスはどんな感じでしたか?
――대학 생활과 밴드 활동의 균형은 어떤 느낌이었나요?
増川:この頃はもう気持ちはバンドに行ってました。
마스카와: 이때는 이미 마음이 밴드 쪽으로 가 있었어요.
大学に受かったという大義名分を得たことによって、気持ちがシフトした感覚があって。
대학에 합격했다는 명분을 얻으면서 마음이 밴드 쪽으로 옮겨간 듯한 감각이 있었어서
ほぼバンド最優先でした。
거의 밴드를 최우선으로 했습니다.
もちろん午前中とか昼間とか、学校に行ける時は行ってましたけど。
물론 오전이나 낮에 학교에 갈 수 있을 때는 갔지만요.
でも、どう考えても無理なスケジュールだったんじゃないかな。
그래도 아무리 생각해도 무리한 스케줄이 아니었나 싶어요.
今思えば、もうちょっと考えて整理すればよかったなとは思いますけれど。
지금 생각하면 조금 더 생각해서 정리했으면 좋았겠다는 생각은 들지만
軽音サークルをちょっと覗いてみたこともありました。
경음악 동아리를 잠깐 구경하러 가본 적도 있었어요.
どんなことやるんだろうって興味があって行ってみたんですね。
어떤 걸 하는 곳일까 궁금해서 가봤던 거예요.
高校時代に升くんと文化祭用に他のバンドをやったことはあったけど、他のバンドはそれくらいで基本的に俺はこのバンド以外知らないので。
고등학교 시절에 마스 군과 문화제용으로 다른 밴드를 해본 적은 있었지만, 다른 밴드는 그 정도였고 기본적으로 저는 이 밴드 이외에는 모르니까요.
勧誘されて、新歓イベントの飲み会みたいなのに参加して。
권유를 받아 신입생 환영 이벤트의 술자리 같은 데에도 참가했고요.
そこにBUMP OF CHICKENのことを知ってる子がいたんです。
그곳에 BUMP OF CHICKEN을 알고 있는 사람이 있었어요.
「え、本当に?」って、すごくびっくりしましたね。
“어, 진짜?” 하면서 정말 놀랐어요.
しかも1人とかじゃなくて、2、3人いたんです。
그것도 한 명 정도가 아니라 두세 명이나 있었어요.
結局、そこからサークルには行かなくなりましたけど。
결국 그 뒤로는 그 동아리에 가지 않게 됐지만요.
地元の友達に「知ってるよ」「聴いたよ」って言われるのと違って、自分の知らない人にバンドを知ってもらえるようになってきたという実感がありましたね。
고향 친구들에게 “알아”, “들었어”라는 말을 듣는 것과는 달리, 제가 모르는 사람들에게도 밴드를 알릴 수 있게 되기 시작했다는 실감이 있었어요.
当時はようやくガラケーを持っていたぐらいで、SNSもなかったし、インターネットで調べることもしなかったから、情報が当の本人であるこっちまで伝わってこないんです。
당시는 겨우 피처폰을 가지고 있던 정도였고 SNS도 없었고, 인터넷으로 검색하는 것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정보가 정작 당사자인 저희한테까지 전달되지 않았어요.
売り上げの状況とかも全然知らなかったし。
판매량이 어떤지도 전혀 몰랐고요.
本当にCDが並んでるのかなって、店に見に行ったりもしました。
정말 CD가 매장에 진열되어 있기는 한 걸까 싶어서 직접 가게에 보러 가기도 했습니다.
――この時期にはバンドにとって多くの出会いがあったと思います。
――이 시기에는 밴드에게 많은 만남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増川さんの視点から振り返って、大きかった出会いは?
마스카와 씨의 시점에서 돌아봤을 때, 큰 영향을 준 만남은 무엇이었나요?
増川:この頃はsyrup16gとかハックルベリーフィンとかBURGER NUDSに出会った頃ですよね。
마스카와: 이 무렵은 syrup16g라든가 Huckleberry Finn이라든가 BURGER NUDS를 만났던 때네요.
そういうライブハウス界隈で会う人たちは、すごく刺激になってました。
그런 라이브하우스 주변에서 만나는 사람들은 굉장히 저에게 자극이 됐어요.
そのちょっと前までは、上手いとか下手とかに関係なく、とにかく自分たちが一番格好いいと思ってやってきていたんです。
조금 전까지는 잘하고 못하고에 관계없이, 어쨌든 우리가 가장 멋있다고 생각하면서 활동해왔거든요.
でも、やっぱり格好いい人は本当に格好いいんだ、ということをちゃんと認められるようになった。
하지만 역시 멋있는 사람은 정말로 멋있다는 걸 제대로 인정할 수 있게 됐어요.
みんな全然敵じゃないし、優しくいろいろ教えてくれたりするし。
다들 전혀 적이 아니었고, 친절하게 이리저리 알려주기도 했고요.
いろんなことを知りました。
여러 가지를 알게 됐어요.
僕らはそこまでなんとなくでやってきたんで、機材についても、「そのほうが楽だな、便利だな」と気付くことはたくさんあったと思います。
저희는 그때까지 상당히 어영부영 해왔기 때문에 장비에 대해서도 “그쪽이 더 괜찮구나, 편리하구나” 하고 깨달은 점이 많이 있었던 것 같아요.
だからといって、バンドマンあるあるのように、そういう人たちと飲み歩くようなことは全然しなかったんですけど。
그렇다고 해서 흔히 밴드맨들에게 있을 법한 일처럼 그런 사람들과 술을 마시러 돌아다니거나 하지는 전혀 않았지만요.
共通の脳みたいなものがあったのかもしれない
공통의 뇌 같은 것이 있었을지도 모른다
――2000年に『THE LIVING DEAD』がリリースされました。
――2000년에 『THE LIVING DEAD』가 발매됐습니다.
タイトなスケジュールの制作だったと思いますが、増川さんとしてはどんな記憶が残っていますか?
빡빡한 일정 속에서 제작했을 것 같은데, 마스카와 씨에게는 어떤 기억이 남아 있나요?
増川:泊まってたわけじゃないけど、帰るのはいつも朝でした。
마스카와: 거기서 잔 건 아니지만, 집에 돌아가는 건 항상 아침이었어요.
今考えると、マジでどうやってたんだろうなって思います。
지금 생각하면 정말 어떻게 했던 걸까 싶어요.
朝までレコーディングで起きてて、次の日にもレコーディングでよくやってたなっていうか。
아침까지 레코딩을 하느라 깨어 있고, 다음 날에도 또 레코딩을 했는데 정말 용케 했구나 싶달까요.
というのも、自分たちの作業が終わった後もミックスが終わるまでずっと待たなきゃいけない状況で。
왜냐하면 저희 작업이 끝난 뒤에도 믹스가 끝날 때까지 계속 기다려야 하는 상황이었거든요.
それに時間がかかるんで、寝てもいいんですけど、あんまり寝れなかったです。
그게 시간이 걸리니까 자도 되긴 했지만, 별로 잠을 자지는 못했어요.
――睡眠時間はほとんどなかった。
――수면 시간은 거의 없었던 거군요.
増川:そうですね。
마스카와: 그렇죠.
『FLAME VEIN』は今まで持っていた曲を録っていたんですけれど、『THE LIVING DEAD』は曲がほぼないところから作っていくっていう感じだったんで。
『FLAME VEIN』은 그때까지 가지고 있던 곡들을 녹음했지만, 『THE LIVING DEAD』는 곡이 거의 없는 상태에서부터 만들어가는 느낌이었거든요.
藤原くんがまだ曲を書き上げてないのに、時間もないから録り始めるみたいな。
후지와라 군이 아직 곡을 다 쓰지도 않았는데 시간이 없으니까 녹음을 시작하는 식이었어요.
机上の空論をしていくみたいな感じでした。
탁상공론을 계속해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ここにどんなメロディが入るかわからない、ここにどんな歌詞が載るのかわからないけど、ここは熱く弾こう、みたいな。
여기에 어떤 멜로디가 들어갈지 모르고, 여기에 어떤 가사가 얹힐지도 모르지만, 여기는 뜨겁게 연주하자, 같은 식이었죠.
そういうことを話し合ったりしてましたね。
그런 걸 서로 이야기하곤 했어요.
カオスだったと思います。
카오스였다고 생각해요.
それが全部終わった後、最後に「Opening」と「Ending」を入れるということを藤原くんが言っていて。
그게 전부 끝난 뒤 마지막으로 「Opening」과 「Ending」을 넣겠다고 후지와라 군이 말했어요.
それも朝だったんじゃないかな。
그것도 아침이었던 것 같아요.
当時のレコーディングのアシスタントエンジニアさんとは、それ以来ずっと会ってなかったんですけれど、近年になってNHK『SONGS』の収録で再会したんです。
당시 레코딩의 어시스턴트 엔지니어 분과는 그 이후로 계속 만나지 못했는데, 최근 들어 NHK 『SONGS』 녹화에서 다시 만났어요.
さすがにメンバーみんな「うわー、懐かしい!」ってなって、その時の気持ちを思い出しましたね。
멤버 모두 역시 “우와, 그립다!”라는 반응이 됐고, 그때의 기분이 떠올랐네요.
――増川さんとして思い入れの強い曲、当時の光景が思い浮かぶ曲は?
――마스카와 씨가 특히 애착을 가지고 있는 곡이나 당시의 풍경이 떠오르는 곡은 무엇인가요?
増川:「グングニル」はすごいと思いましたね。
마스카와: 「グングニル(궁니르)」는 대단하다고 생각했어요.
Aメロの1番と2番でコード進行の尺が倍になってるんですよ。
A멜로의 1절과 2절에서 코드 진행의 길이가 두 배가 되거든요.
「そんなことある?」って思って。
“그런 게 가능해?”라고 생각했죠.
弾いてる時はその部分がどうなるのかわからないんですよね。
연주하고 있을 때는 그 부분이 어떻게 될지 알 수가 없어요.
けれど、できてみると「こうなるのね」という。
그런데 완성된 걸 보면 “아, 이렇게 되는구나” 하는 거죠.
この曲に限らず、全てにおいてビックリすることばかりで、それが楽しくてしょうがなかった感じでしたね。
이 곡에 한정되지 않고 모든 면에서 놀랄 것 투성이였고, 그게 즐거워서 견딜 수 없을 정도였던 느낌이에요.
「リリィ」も、イントロと曲中で同じリフに聴こえるんですけれど、実は長さが違うフレーズがあるんです。
「リリィ(릴리)」도 인트로와 곡 중간에서 같은 리프로 들리지만, 사실은 길이가 다른 프레이즈가 있어요.
そういうのも、当時の藤くんは別段何の説明もせずに始めるし、こっちも「オッケー」って受け取ってやっていって。
그런 것도 당시의 후지 군은 딱히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고 시작했고, 저희도 “오케이” 하고 받아들여서 해나갔어요.
今だったら逆に考えられないです。
오히려 지금이라면 상상도 못 해요.
「ちょっと待って、教えて。これ何小節になってる?」みたいに訊くし、メモを残そうとするんですけど、当時はそれさえもしようとしなかったので。
“잠깐만, 알려줘. 이거 몇 마디로 되어 있어?” 같은 식으로 물어볼 거고, 메모를 남기려고 할 텐데 당시에는 그것조차 하려고 하지 않았거든요.
怖い(笑)。
무서워요(웃음).
何を見ながらやってたの?って思います。
뭘 보면서 했던 거야? 싶어요.
――何も書きとめてなかった?
――아무것도 적어두지 않았나요?
増川:構成表はあったのかな。
마스카와: 구성표는 있었으려나.
あの頃、僕はコードもちゃんと書けないし、譜面なんか当然書けないし。
그 무렵의 저는 코드도 제대로 적을 수 없었고, 악보 같은 건 당연히 쓸 수 없었고
歌詞もなかった。
가사도 없었고요.
「これ、どういう風にやってたんですか、教えてください」って今の若い子に聞かれたとしても、何の参考にもならないと思います。
“이거 어떻게 하셨던 건가요, 알려주세요”라고 지금 젊은 친구가 물어본다고 해도 전혀 참고가 되지 않을 것 같아요.
絶対にメモを書いたほうがいいし、今だったら当然書くし。
무조건 메모를 적는 게 좋고, 지금이라면 당연히 적을 거고요.
こういう即席で決めたことほど、次の日に全然覚えてなかったりするんで。
이렇게 즉석에서 정한 것일수록 다음 날이 되면 전혀 기억하지 못하기도 하거든요.
でも、チャマに聞いたり、藤くんに聞いたりして補完し合ってたとは思いますね。
그래도 챠마에게 묻거나 후지 군에게 물어보면서 서로 보완했던 것 같아요.
「あそこ、どうやってたっけ?」って、みんなで話しているから忘れないという。
“거기 어떻게 했더라?” 하고 다 같이 이야기하고 있으니까 잊지 않는 거죠.
そういう共通の脳みたいなものがあったのかもしれない。
그런 공통의 뇌 같은 것이 있었을지도 모르겠어요.
――なるほど。
――그렇군요.
4人の共通の脳みたいなものがある、というのはすごくBUMP OF CHICKENらしい話だなと思います。
네 명에게 공통의 뇌 같은 것이 있다는 건 정말 BUMP OF CHICKEN다운 이야기라고 생각합니다.
それこそ前回の取材でお伺いした幼稚園から小中学校のエピソードも、いろんなところで4人で話したことでそれぞれの記憶が鮮明に残っているんじゃないかと思うんです。
바로 지난번 취재에서 들었던 유치원 시절부터 초·중학교 시절의 에피소드도 여러 자리에서 네 명이 함께 이야기했기 때문에 각각의 기억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게 아닐까 싶거든요.
それと同じかもしれない。
그것과 같은 것일지도 모르겠네요.
増川:わかります。
마스카와: 뭔지 알 것 같아요.
きっと、みんなで記憶を反芻してるんですよね。
분명 다 같이 기억을 되새기고 있는 거겠죠.
だから、時々ちょっとわかんなくなっちゃうというか、「これ、俺の記憶だったっけな?」っていうこともたまにあって。
그래서 가끔 조금 헷갈리게 된다고 해야 할까요, “이게 내 기억이었나?” 싶은 일도 가끔 있고요.
みんなで話してる時に「あれ? あの時、いなかったじゃん」って言われて、「そっか、4人でその時のこと話してたから俺も行った気になってただけか」みたいな。
다 같이 이야기하다가 “어라? 그때 너 없었잖아”라는 말을 듣고, “아, 그렇구나. 네 명이서 그때 일을 이야기했으니까 나도 갔던 기분이 들었을 뿐이구나” 같은 식이죠.
いろんな思惑とか力みたいなものを肌で感じ始めていた
여러 사람의 의도나 힘 같은 것을 피부로 느끼기 시작했다
――この頃はメジャーデビューに向けての話も動き始めていたと思います。
――이 무렵에는 메이저 데뷔를 향한 이야기도 움직이기 시작했던 것 같습니다.
環境の変化について、増川さんはどう感じてましたか?
환경의 변화에 대해 마스카와 씨는 어떻게 느끼고 있었나요?
増川:いろんな思惑とか力みたいなものを肌で感じ始めていた感じでしたね。
마스카와: 여러 사람들의 의도라든가 힘 같은 것을 피부로 느끼기 시작했던 느낌이었어요.
最初に声をくれた女性スタッフが「このレーベルがいいんじゃないか」と言ったり、「いや、こっちがいいんじゃないか」みたいな人がいて。
처음에 연락을 해준 여성 스태프가 “이 레이블이 좋지 않을까”라고 말하기도 하고, “아니, 이쪽이 더 좋지 않을까”라고 말하는 사람도 있었는데
でも僕ら自身は「いやいや、こっちがいいんだよね」みたいなのもあったり。
하지만 저희 자신에게는 “아니 아니, 우리는 이쪽이 좋은데” 같은 생각도 있었고요.
それを話し合ったり、すり合わせたり、時には揉めたりしつつ、最終的には僕らが行きたいと思っていたTOY’S FACTORYに決まったという。
그걸 서로 이야기하고 조율하고, 때로는 부딪히기도 하면서 최종적으로는 저희가 가고 싶다고 생각했던 TOY’S FACTORY로 결정된 그런
ちゃんと決まるまでは、そういう不安な時期でもありました。
제대로 결정되기 전까지는 그런 불안한 시기이기도 했어요.
――当時のファンの中ではインディーズからメジャーに変わることに対して「やったね、おめでとう」だけではなく「BUMP OF CHICKEN、メジャーに行っちゃうんだ」みたいな、ちょっとネガティブな受け止めもされていた時期だったと思います。
――당시 팬들 사이에서는 인디즈에서 메이저로 넘어가는 것에 대해 “잘됐다, 축하해”라는 반응만 있었던 게 아니라, “BUMP OF CHICKEN, 메이저로 가버리는구나” 같은 조금 부정적인 반응도 있었던 시기라고 생각합니다.
このあたり、増川さんはどう感じていましたか?
이 부분에 대해 마스카와 씨는 어떻게 느끼고 있었나요?
増川:たしかに「なんでメジャー?」という反応もありました。
마스카와: 확실히 “왜 메이저야?”라는 반응도 있었어요.
僕らとしても「何がどう違うの?」みたいなのも当時はそこまでわからなかったし。
저희 역시 “뭐가 어떻게 다른 거야?”라는 걸 당시에는 그렇게까지 잘 알지 못했고요.
だから、そういうのとは関係なく「この人たちと一緒にお仕事をしたい」というのが大きかったですね。
그래서 그런 것과는 관계없이 “이 사람들과 함께 일을 하고 싶다”는 마음이 컸어요.
それがメジャーデビューだったというだけで、僕らはそれをそこまで大きく捉えてなかったという。
그게 메이저 데뷔였을 뿐이고, 저희는 그것을 그렇게까지 큰 일로 받아들이지는 않았다는 거죠.
結果、「ダイヤモンド」でメジャーデビューしても、関わる人がちょっと変わるくらいで、しばらくはそんなに環境も変わらなかったです。
결과적으로 「ダイヤモンド(다이아몬드)」로 메이저 데뷔를 한 뒤에도 함께 일하는 사람들이 조금 바뀌는 정도였고, 한동안은 환경도 그렇게 크게 달라지지 않았습니다.
ラジオはすごく大事で、僕らにとって重要なメディアのひとつ
라디오는 굉장히 중요하고, 우리에게 중요한 미디어 중 하나
――2000年に「ダイヤモンド」でメジャーデビューしたわけですが、その後の状況を振り返って、どんな記憶がありますか?
――2000년에 「ダイヤモンド(다이아몬드)」로 메이저 데뷔를 했는데, 그 이후의 상황을 돌아봤을 때 어떤 기억이 있나요?
増川:この頃はとても忙しかったですね。
마스카와: 이 무렵에는 굉장히 바빴어요.
それまではライブやって、リハして、レコーディングしてという3つの軸しかなかったんですけれど、急にそれ以外のお仕事がいっぱい入ってくるようになった。
그전까지는 라이브를 하고, 리허설을 하고, 레코딩을 하는 세 가지 축밖에 없었는데 갑자기 그 외의 일이 잔뜩 들어오기 시작했어요.
ラジオや雑誌に出させてもらったりすることも増えて、たぶん今よりも忙しかったと思います。
라디오나 잡지에 출연하게 되는 일도 늘었고, 아마 지금보다도 바빴던 것 같아요.
中でも、ラジオはすごく大事で、僕らにとって重要なメディアのひとつですね。
그중에서도 라디오는 굉장히 중요했고, 저희에게 중요한 미디어 중 하나이기도 해요.
――BUMP OF CHICKENはbayfmでレギュラー番組『PONTSUKA!!』もありますし、ラジオを大事にしているイメージはすごくありますね。
――BUMP OF CHICKEN은 bayfm에서 정규 프로그램 『PONTSUKA!!』도 하고 있고, 라디오를 중요하게 여긴다는 이미지가 굉장히 강합니다.
増川:そうですね。
마스카와: 그렇죠.
この頃からbayfmとの付き合いも生まれたし、他のいろんな地方局のコメントを求められることも多くなって。
이 무렵부터 bayfm과의 인연도 생겼고, 다른 여러 지방 방송국에서 코멘트를 요청받는 일도 많아졌어요.
全国のラジオ局を行脚することもありました。
전국의 라디오 방송국을 순회하기도 했습니다.
この頃に『オールナイトニッポン』も始まりましたし。
이 무렵에 『올나이트 닛폰』도 시작됐고요.
やっぱりそういうのが入るとすごく忙しさが増すんですよね。
역시 그런 일정이 들어오면 굉장히 바빠지네요.
そういう嵐の中で、戸惑いつつも、いろんなことが進んでいく時期でもあって。
그런 폭풍 속에서 당황하면서도 여러 일이 계속 진행되어 가던 시기이기도 했어요.
その流れとか渦のようなものが、「天体観測」の時に、ものすごい大きなことになったなっていう印象があって。
그 흐름이나 소용돌이 같은 것이 「天体観測(천체관측)」 때 엄청나게 큰 것이 됐다는 인상이 있어서.
――ブレイクの渦中の実感はどんな感じでしたか?
――브레이크의 소용돌이 속에서 느낀 실감은 어땠나요?
増川:そこは本当にびっくりしました。
마스카와: 정말 놀라웠어요.
うまくやれてたからよかったけど、下手したら心を病んじゃうぐらいの感じでした。
그럭저럭 잘 해냈으니까 다행이지만, 잘못했으면 마음이 병들어버릴 수도 있을 정도의 느낌이었어요.
どこに行ってもパシャって写真を撮られるんですよ。
어디를 가든 찰칵하고 사진을 찍히는 거예요.
公開ラジオでもみんな撮影しちゃうんですよね。
공개 라디오에서도 사람들이 모두 사진을 찍어버렸고요.
そういうギャップにちょっと苦しんでたと思います。
그런 괴리감 때문에 조금 힘들었던 것 같아요.
ライブの感じも変わりましたね。
라이브의 느낌도 달라졌네요.
10代の頃は、いつも来てくれる人と終わった後にちょっと話したりもしてたんですよ。
10대 때는 늘 와주는 사람들과 끝난 뒤에 조금 이야기를 나누기도 했거든요.
写真を頼まれたら撮るし、サインも書くし、「久しぶりだね」みたいにこっちからも声をかけたりもしていた。
사진을 부탁받으면 찍어주고, 사인도 해주고, “오랜만이네” 같은 식으로 저희 쪽에서 먼저 말을 걸기도 했어요.
でも、お客さんがどんどん増えていって、そういうのもだんだん難しくなっていって。
하지만 관객이 점점 늘어나면서 그러기도 점점 어려워졌고요.
楽屋から離れるわけにもいかなくなって、会いには行けなくなる。
대기실에서 멀리 떨어질 수도 없게 되고, 만나러 갈 수도 없게 됐어요.
ちょっと申し訳ないなって思った気持ちを覚えてますね。
조금 미안하다고 생각했던 마음이 기억납니다.
ただ、戸惑いはしてましたけれど、基本的には楽しんでましたね。
다만 당황하기는 했지만 기본적으로는 즐기고 있었어요.
嵐の渦中にいながらも、4人ではめちゃめちゃ笑ってたし。
폭풍의 소용돌이 한가운데 있으면서도 네 명이서는 정말 많이 웃었고
ラジオ局からラジオ局に移動するタクシーでも、本当にアホなことを言い合ってたし。
라디오 방송국에서 다른 라디오 방송국으로 이동하는 택시 안에서도 정말 바보 같은 이야기들을 서로 주고받았고요.
そうして保たれてたのかもしれないです。
그렇게 해서 버틸 수 있었던 걸지도 모르겠어요.
――この頃にはフェスへの出演も増えてきましたね。
――이 무렵에는 페스티벌 출연도 늘어나기 시작했죠.
増川:ROCK IN JAPAN FESTIVALに最初に出た時は、たしか出番が初っ端だったんですよ。
마스카와: ROCK IN JAPAN FESTIVAL에 처음 나갔을 때는 아마 저희 순서가 맨 처음이었어요.
渋谷(陽一)さんが紹介してくれたのを覚えてて。
시부야 요이치 씨가 소개해줬던 게 기억나요.
売ってるグッズでもなんでもない4人のお揃いのTシャツを着たりしてましたね。
판매하는 굿즈도 뭣도 아닌, 네 명이 똑같이 맞춘 티셔츠를 입기도 했어요.
あれだけ大きな野外のステージでやることも初めてだったし、フェスのお客さんには、ワンマンのお客さんとは違う、こっちを探ってくるような感触もあって。
그렇게 큰 야외 스테이지에서 공연하는 것도 처음이었고, 페스티벌 관객에게서는 단독공연 관객과는 다른, 이쪽을 탐색하는 듯한 감촉도 있었고
そういう空気も初めて知りましたね。
그런 분위기도 처음 알게 됐어요.
――ROCK IN JAPAN FESTIVALだけでなく、いろんな地方のフェスに出ることで、自分たちの居場所が広がっていった感じもあったんじゃないかなと思います。
――ROCK IN JAPAN FESTIVAL뿐만 아니라 여러 지방의 페스티벌에 출연하면서 자신들의 자리가 넓어져 갔다는 느낌도 있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
増川:少なからず、僕らの歴史の根幹の一つになってると思います。
마스카와: 적어도 저희 역사의 근간 중 하나가 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たとえば地方のラジオ局主催のイベントに出たり、そういう中でいろんなつながりができていって。
예를 들어 지방 라디오 방송국이 주최하는 이벤트에 출연하기도 했고, 그런 과정에서 여러 인연이 생겨났고요.
今では、地方のラジオ局に行ったらそういう人が偉くなっていたりして、「お久しぶりです」って挨拶したりして。
지금은 지방 라디오 방송국에 가면 그때 만났던 사람이 높은 자리에 올라 있기도 해서 “오랜만입니다” 하고 인사하기도 해요.
この頃にこういうつながりを持てたからかなって今は思いますね。
이 무렵에 이런 인연을 만들 수 있었기 때문이 아닐까 하고 지금은 생각합니다.
――ラジオとフェスって、どちらもローカルな場ですよね。
――라디오와 페스티벌은 둘 다 로컬한 공간이죠.
BUMP OF CHICKENは数字だけで振り返ると「天体観測」でブレイクしたバンドなわけですが、ほぼ同時期に、いろんなローカルな人たちと信頼関係や共闘関係みたいなものを結んでいたのが大きいと思います。
BUMP OF CHICKEN은 수치만 놓고 돌아보면 「天体観測」으로 크게 성공한 밴드지만, 거의 같은 시기에 여러 지역의 사람들과 신뢰 관계나 함께 싸우는 동료 같은 관계를 맺고 있었다는 점이 컸다고 생각합니다.
増川:そうなんですよね。
마스카와: 맞아요.
おっしゃる通りで、そこで長く続く出会いがたくさんあった。
말씀하신 그대로고, 거기에서 오랫동안 이어지는 만남이 많이 생겼어요.
たとえば大阪のFM802と「RADIO CRAZY」もそうだし、ローカルのラジオ局が今はフェスをやっていて。
예를 들어 오사카의 FM802와 「RADIO CRAZY」도 그렇고, 지역 라디오 방송국들이 지금은 페스티벌을 열고 있잖아요.
ありがたいですよね、本当に。
감사한 일이죠, 정말로.
意識はしてなかったですけど、それは得ようと思っても得られない財産になっていると思います。
당시에는 의식하지 않았지만, 그건 얻으려고 한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닌 재산이 되어 있다고 생각해요.
僕から渡したのは1で、残りの99は藤原くんが作ったみたいなもの
내가 건넨 건 1이고, 나머지 99는 후지와라 군이 만든 것과 같다
――2002年に『jupiter』がリリースされましたが、増川さんの思い入れの強い曲は?
――2002년에 『jupiter』가 발매됐는데, 마스카와 씨가 특히 애착을 가지고 있는 곡은 무엇인가요?
増川:やっぱり思い入れで言うなら「キャッチボール」ですね。
마스카와: 역시 애착으로 말한다면 「キャッチボール(캐치볼)」이네요.
この頃は、部屋に泊まるでもなく、どこかに遊びに行くとかでもなく、しょっちゅう藤原くんと会っていて。
이 무렵에는 집에서 자고 가는 것도 아니고, 어디 놀러 가는 것도 아닌데 자주 후지와라 군과 만나고 있었어요.
そんな流れの中で、よくバドミントンをやってたんですよ。
그런 흐름 속에서 배드민턴을 자주 쳤어요.
その時に藤原くんが住んでた家の近くの公園とか神社とかでやってたんですけど、結構ガチで打ち合っていて。
당시 후지와라 군이 살던 집 근처의 공원이나 신사 같은 곳에서 쳤는데, 꽤 진지하게 서로 치고받았어요.
そういう時に、俺が「こういうのあるけど、どうかな」みたいな話をして。
그럴 때 제가 “이런 게 있는데, 어떨까” 같은 이야기를 했죠.
――増川さんから藤原さんに曲のアイデアを聴かせた。
――마스카와 씨가 후지와라 씨에게 곡의 아이디어를 들려준 거군요.
増川:そうは言っても、僕は全然曲もちゃんと書けないし、アイデアといってもギターのワンフレーズくらいのものなんですよ。
마스카와: 그렇게 말해도 저는 곡을 제대로 쓸 수도 없었고, 아이디어라고 해도 기타 한 프레이즈 정도였어요.
で、2人で箱根に行くことになった時に、そこにギターも持っていって作ったのがこの曲で。
그러다가 둘이 하코네에 가게 됐을 때 기타도 가지고 가서 만든 것이 이 곡이에요.
箱根から帰ってきてみんなに聴いてもらったのを覚えてます。
하코네에서 돌아온 뒤 모두에게 들려줬던 게 기억납니다.
僕が渡したのは1で、残りの99は藤原くんが作ったみたいなものなので。
제가 건넨 건 1이고, 나머지 99는 후지와라 군이 만든 것이나 마찬가지니까요.
アイデアになるようなものを渡せたのかはわからないけれど、すごくいい思い出ですね。
아이디어가 될 만한 것을 건넬 수 있었던 건지는 모르겠지만, 굉장히 좋은 추억이에요.
――そのバドミントンの時の光景が「キャッチボール」として描かれたと。
――그 배드민턴을 치던 때의 풍경이 「キャッチボール」로 그려진 거군요.
増川:そうですね。
마스카와: 그렇죠.
とても貴重な体験だったなと思います。
굉장히 귀중한 경험이었다고 생각합니다.
僕個人としては、自分もミュージシャンですけど、ゼロから生み出す人のことをものすごくリスペクトしていて。
저 개인적으로는 저도 뮤지션이지만, 무에서 무언가를 만들어내는 사람을 굉장히 존경하고 있어요.
もちろん目撃はしてるんですけど、すごく神聖なものだと思っていて。
물론 그 과정을 목격하고 있기는 하지만, 굉장히 신성한 것이라고 생각하고요.
そこにアレンジで力添えできたら嬉しいけれど、そういう神聖な部分に触れるのは恐れ多いという感覚があって。
거기에 편곡으로 힘을 보탤 수 있다면 기쁘지만, 그런 신성한 부분에 손을 대는 건 황송하다는 감각이 있었어요.
だから、その中に加われたことがすごく嬉しかったです。
그래서 그 안에서 함께할 수 있었다는 것이 정말 기뻤습니다.
――2002年は『jupiter』がリリースされた後も活動の密度はとても濃かったと思います。
――2002년은 『jupiter』가 발매된 뒤에도 활동의 밀도가 굉장히 높았던 것 같습니다.
対バンツアーもあり、その年には「スノースマイル」もリリースされています。
다른 밴드와 함께하는 투어도 있었고, 그해에는 「スノースマイル(스노 스마일)」도 발매됐습니다.
増川:「スノースマイル」はリリース日に北海道でラジオ局のイベントに出させてもらって。
마스카와: 「スノースマイル」은 발매일에 홋카이도에서 라디오 방송국 이벤트에 출연했어요.
すごく寒かったのを覚えてます。
굉장히 추웠던 게 기억납니다.
ライブも多かったですね。
라이브도 많았고요.
毎回、ズシッと重たい一撃をもらうように曲と向き合っていた
매번 묵직한 일격을 얻어맞듯 곡과 마주하고 있었다
――2004年には『ユグドラシル』がリリースされました。
――2004년에는 『ユグドラシル(유그드라실)』이 발매됐습니다.
2003年から2004年にかけて、制作時期を振り返ってどんな記憶がありますか?
2003년부터 2004년에 걸친 제작 시기를 돌아봤을 때 어떤 기억이 있나요?
増川:このあたりはヘビーでしたね。
마스카와: 이 시기는 무거웠어요.
特に「ロストマン」は、曲が僕らのところに来るまでにもすごく時間がかかって。
특히 「ロストマン(로스트맨)」은 곡이 저희에게 오기까지도 굉장히 오랜 시간이 걸렸어요.
藤原くんのかなりコアな内面を描いているようなところもあって、だから時々怖くなるようなこともありました。
후지와라 군의 상당히 깊은 내면을 그리고 있는 듯한 부분도 있어서, 그래서 가끔 무서워질 때도 있었어요.
やってること自体は普段と変わらないんですけど、そのムードが自然と僕らにも伝播していくというか。
하고 있는 일 자체는 평소와 다르지 않았지만, 그 무드가 자연스럽게 저희에게도 전염되어 간다고 해야 할까요.
これはただごとじゃない、みたいな曲しか出てこないんで。
이건 보통 일이 아니다, 싶은 곡밖에 나오지 않았거든요.
毎回、ズシッと重たい一撃をもらうように曲と向き合っていた感じです。
매번 묵직한 일격을 얻어맞는 것처럼 곡과 마주하고 있던 느낌이에요.
――升さんはドラムの先生に個人的についたり、チャマさんも演奏力の向上や音楽理論を学ぶような時間もあったと言ってましたが、増川さんとしてはどうでしたか?
――마스 씨는 개인적으로 드럼 선생님에게 배우기도 했고, 차마 씨도 연주력 향상이나 음악 이론을 공부하는 시간을 가졌다고 말했는데, 마스카와 씨는 어땠나요?
増川:それはもちろんありました。
마스카와: 물론 그런 건 있었어요.
誰か特定の人に習うというのはなかったんですけれど、全然できてなくて「このままじゃダメだ」という意識はすごくありましたね。
특정한 누군가에게 배우지는 않았지만, 제가 전혀 제대로 해내지 못하고 있어서 “이대로는 안 된다”는 의식은 굉장히 강했어요.
楽曲のクオリティと繊細さがどんどん上がっていたので。
곡의 퀄리티와 섬세함이 계속해서 올라가고 있었으니까요.
この頃は本当に一筋縄ではいかない曲ばかりですね。
이 무렵에는 정말 쉽게 해결할 수 없는 곡들뿐이었어요.
ギターをギターのように聴かせなくてもいいし、決められた弾き方じゃなくていい。
기타를 꼭 기타처럼 들리게 하지 않아도 되고, 정해진 방식으로 연주하지 않아도 됐어요.
アプローチの仕方にお手本がない曲ばかりで。
접근 방식에 모범답안이 없는 곡들뿐이었고요.
知らないことが多すぎるということに、本当に打ちのめされるようなことも何度もありました。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는 사실에 정말 처참하게 무너지는 듯한 일도 여러 번 있었습니다.
――『ユグドラシル』の中で、思い入れの強い曲、当時の記憶や光景が鮮明に残っている曲は?
――『ユグドラシル』 중에서 특히 애착이 강한 곡이나 당시의 기억과 풍경이 선명하게 남아 있는 곡은 무엇인가요?
増川:「車輪の唄」ですね。
마스카와: 「車輪の唄(차륜의 노래)」네요.
僕、こういう音楽はあんまり通ってこなかったし、よく分からなかったんですよ。
저는 이런 음악을 별로 접해오지 않았고, 잘 알지도 못했어요.
でも前から藤原くんはそういうのが好きだったんですよね。
그런데 예전부터 후지와라 군은 그런 음악을 좋아했어요.
だから一緒にレコード屋さんに行っても、入り口で別れて、僕がロックのコーナーに行ってるあいだに藤原くんが違う階に行ってるみたいなこともあって。
그래서 같이 레코드 가게에 가도 입구에서 갈라져서, 제가 록 코너에 가 있는 동안 후지와라 군은 다른 층에 가 있는 일도 있었어요.
そういうものが彼の中で消化されて、BUMP OF CHICKENとして生まれはじめた。
그런 것들이 그의 안에서 소화되어 BUMP OF CHICKEN이라는 형태로 태어나기 시작한 거죠.
これも知らないことが多すぎるっていう、その一つだったかなと思うんですけど。
이것도 ‘모르는 것이 너무 많다’는 것 중 하나였던 것 같아요.
こういうリズムに初めて出会った頃じゃないかな。
이런 리듬을 처음 접했던 무렵이 아니었나 싶어요.
――曲が求めるものが大きくなり、それで必死に食らいつくみたいな時期だった。
――곡이 요구하는 것이 점점 커졌고, 거기에 필사적으로 매달려 따라가던 시기였군요.
増川:そうですね。
마스카와: 그렇죠.
かつ、自分の中での正解も分かってないというか。
그러면서도 제 안에서의 정답도 모르고 있었다고 해야 할까요.
難しいですよね。
어렵네요.
ここら辺はやっぱり悔しいこともたくさんありました。
이 시기에는 역시 분한 일도 많이 있었어요.
全然追いついてない部分もありましたし。
전혀 따라가지 못하는 부분도 있었고요.
みんなが100%以上の力を出さないと届かないというか。
모두가 100% 이상의 힘을 내지 않으면 도달할 수 없는 느낌이었다고 할까요.
『THE LIVING DEAD』の時のように、理解ができないままで進むわけにはいかなくなっていて。
『THE LIVING DEAD』 때처럼 이해하지 못한 상태로 그대로 진행할 수는 없게 됐어요.
わかった上で、ちゃんと音符通りに弾く。
이해한 상태에서 제대로 음표대로 연주해야 했었어요.
だから時間がかかっちゃったという。
그래서 시간이 걸렸던 거죠.
近年、この頃の曲をライブでやるようになって、ようやくあの頃弾けなかったものを弾けるようになった感じもありました。
최근 들어 이 시기의 곡들을 라이브에서 연주하게 되면서, 이제야 그때 연주하지 못했던 것들을 연주할 수 있게 된 듯한 느낌도 있었어요.
その時は精一杯やってたけど、やっぱり追いつけてなかったなって思いますね。
그때는 최선을 다했지만 역시 따라가지 못했구나 하고 생각합니다.
自分は「BUMP OF CHICKEN特化型」
나는 ‘BUMP OF CHICKEN 특화형’
――そういう中で、増川さんのギタリストとしてのアイデンティティって、どんな風に育っていったと思いますか?
――그런 가운데 마스카와 씨의 기타리스트로서의 아이덴티티는 어떤 식으로 자라났다고 생각하시나요?
たとえば自分にとってのギターヒーローのような人はいましたか?
예를 들어 자신에게 기타 히어로 같은 사람은 있었나요?
増川:自分は「BUMP OF CHICKEN特化型」というか、このバンドに必死に食らいつくことだけをしてきてたので。
마스카와: 저는 ‘BUMP OF CHICKEN 특화형’이라고 해야 할까요, 이 밴드에 필사적으로 매달려 따라가는 것만 해왔기 때문에요.
明確にギターヒーローとして誰かを追ってきてなかった感じですね。
명확하게 기타 히어로로서 누군가를 좇아온 건 아닌 것 같아요.
もちろん、その時その時ではいるんです。
물론 그때그때는 있었어요.
いろんなミュージシャンの曲を聴いて、いろんなギタリストのフレーズに「こういうの格好いいな」って思ったりもしてきたので。
여러 뮤지션의 곡을 듣고, 여러 기타리스트의 프레이즈를 들으며 “이런 거 멋있다”라고 생각하기도 했으니까요.
けれど、じゃあそれが自分のプレイスタイルになっているのかっていうと、そんなことはないというか。
하지만 그렇다고 그것이 제 연주 스타일이 됐느냐고 하면 그런 건 아니라고 해야 할까요.
BUMP OF CHICKENの曲がよく聴こえればいいというか。
BUMP OF CHICKEN의 곡이 좋게 들리면 된다고 할까요.
それだけなのかもしれないですね。
그것뿐일지도 모르겠네요.
あとは、この頃はまだそこまで行けてないけれど、次のアルバムの「flyby」とか、ああいうリフレインするフレーズをグルーヴに乗って弾いているときが一番気持ち良かったりするんですよね。
그리고 이 무렵에는 아직 거기까지 도달하지 못했지만, 다음 앨범의 「flyby」 같은, 그런 반복되는 프레이즈를 그루브에 올라타서 연주하고 있을 때가 가장 기분 좋기도 해요.
別に強い主張を持って弾いているわけではないけど、僕の中ではイケてる瞬間というか。
딱히 강한 주장을 가지고 연주하는 건 아니지만, 제 안에서는 잘 나가는 순간이라고 해야 할까요.
そんな感じがします。
그런 느낌이 들어요.
――折れそうな時はありました?
――마음이 꺾일 것 같은 때는 있었나요?
増川:あったといえば、常にありましたね。
마스카와: 있었다고 한다면 늘 있었어요.
やっぱり藤原くんはどんどん上手くなっていくんです。
역시 후지와라 군은 계속해서 실력이 좋아졌거든요.
ギターもめちゃめちゃ上手いし、彼だったら弾けるし。
기타도 엄청나게 잘 치고, 그라면 연주할 수 있었고요.
今だったら「こういう風に練習すればよかったのに」って思うんですけど、練習の仕方自体が下手だったし。
지금이라면 “이런 식으로 연습했으면 됐잖아”라고 생각하지만, 연습하는 방법 자체가 서툴렀어요.
折れそうって言ったらずっと折れそうだったと思います。
꺾일 것 같았다고 말한다면 계속해서 꺾일 것 같았던 것 같아요.
でも、それでも弾きたいという気持ちは消えなかったし、やっぱり「好き」という気持ちのほうが勝つというか。
그래도 연주하고 싶다는 마음은 사라지지 않았고, 역시 ‘좋아한다’는 마음 쪽이 더 강했다고 할까요.
それはメンバーに対してもそうだし、曲に対してもそうだし。
그건 멤버들에 대해서도 그렇고, 곡에 대해서도 그렇고요.
あと、さっき言ったような気持ちいい瞬間はやっぱり味わってるんで。
그리고 아까 말했던 것처럼 기분 좋은 순간들을 역시 경험하고 있으니까요.
――そういうものを乗り越えてきて、今に至っているのではないかと思います。
――그런 것들을 극복해오면서 지금에 이른 게 아닐까 싶습니다.
増川:そうですね。
마스카와: 그렇죠.
たくさん救われてきたし。
정말 많이 구원받아왔고요.
レコーディングはリリースするまでの作業なので、そこで何か悔しさを残してしまったとしても、ありがたいことにここまでやってきてるんで、挽回できるチャンスをいっぱい貰えるんですよ。
레코딩은 음원을 발매하기까지의 작업이기 때문에 거기에서 어떤 아쉬움이나 분함을 남겼다고 하더라도, 감사하게도 저희가 여기까지 계속 활동해왔기 때문에 만회할 수 있는 기회를 많이 받을 수 있어요.
たとえば「車輪の唄」だって、何度もライブでやってきたけれど、その中には悔しいなって思う日もあるんです。
예를 들어 「車輪の唄」도 여러 번 라이브에서 연주해왔지만, 그중에는 분하다고 생각하는 날도 있어요.
でも、また今後のライブで、それをさらに上回る演奏をするチャンスをもらえる。
하지만 앞으로의 라이브에서 그것을 더욱 뛰어넘는 연주를 할 기회를 또 받을 수 있죠.
「レム」なんて、こないだのツアーで初めてバンドでやったわけで。
「レム(렘)」 같은 곡은 얼마 전 투어에서 처음으로 밴드 편성으로 연주했거든요.
それはすごくありがたいですね。
그건 정말 감사한 일입니다.
嵐の大海原を笑顔で漕いでいくみたいな感じだった
폭풍이 이는 드넓은 바다를 웃으며 노 저어 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다
――では逆に、シンプルに楽しかった、嬉しかった記憶としてはどんなものがありますか?
――그렇다면 반대로, 단순하게 즐거웠다거나 기뻤던 기억으로는 어떤 것들이 있나요?
増川:いっぱい初めての経験をさせてもらったんで。
마스카와: 정말 많은 ‘처음’을 경험하게 해주셨으니까요.
そういうのは全部楽しかったですね。
그런 건 전부 즐거웠어요.
『ONE PIECE』で初めて書き下ろしのタイアップをやって、尾田栄一郎先生とお会いしたのもそうだし。
『ONE PIECE』에서 처음으로 작품을 위해 새 곡을 쓰는 타이업을 하고, 오다 에이이치로 선생님을 만난 것도 그렇고요.
『テイルズ オブ ジ アビス』もそうですね。
『テイルズ オブ ジ アビス(테일즈 오브 디 어비스)』도 그렇습니다.
僕らはゲームというものに対して並々ならぬ思いがある人たちなんで。
저희는 게임이라는 것에 대해 보통 이상의 남다른 애정을 가진 사람들이거든요.
それまでは好きなゲームが出たら買ってプレイするだけの立場だったのに、制作前から話を聞いて。
그전까지는 좋아하는 게임이 나오면 사서 플레이하기만 하는 입장이었는데, 제작 전부터 이야기를 듣게 됐어요.
どういうゲームかを知るためにテイルズの最新作をプレイしてみたり、そういう向き合い方も初めてでした。
어떤 게임인지 알기 위해 테일즈의 최신작을 플레이해보기도 했고, 그런 식으로 작품과 마주하는 것도 처음이었습니다.
あとは僕、MVの撮影も大好きで。
그리고 저는 MV 촬영도 정말 좋아해요.
出来上がった曲に対しての作業なんで、少し客観的でもあるし。
이미 완성된 곡에 대해 하는 작업이기 때문에 조금 객관적으로 볼 수도 있고요.
シンプルに出かけてロケしてっていうのがすごく楽しくて。
단순히 밖에 나가서 로케이션 촬영을 하는 것 자체가 굉장히 즐거워요.
そういう楽しいお仕事もたくさんあったし、誇らしいこともありました。
그런 즐거운 일도 많이 있었고, 자랑스러운 일도 있었습니다.
――MVについてはどうでしょう?
――MV에 대해서는 어떤가요?
撮影を振り返って、印象に残っているものは?
촬영을 돌아봤을 때 특히 인상에 남아 있는 것은 무엇인가요?
増川:「ダイヤモンド」ですね。
마스카와: 「ダイヤモンド」네요.
たしかハイエースみたいな車をマネージャーが運転して足尾銅山に行ったんです。
아마 하이에이스 같은 차를 매니저가 운전해서 아시오 동산에 갔어요.
朝から一日がかりの撮影だったんですけれど、だんだん暗くなってきちゃって。
아침부터 하루 종일 촬영했는데, 점점 어두워지기 시작했어요.
僕のカットの時は真っ暗になっちゃって、車のライトかなんかで照らしたんですよね。
제 컷을 찍을 때는 완전히 깜깜해져 버려서 자동차 라이트 같은 걸로 비췄어요.
その時の焦った気持ちは覚えてます。
그때 조급했던 기분은 기억하고 있습니다.
あと、当時はまだ、自分たちで買った服を着て撮ってるんですけど、今見ると可愛いなって思います。
그리고 당시에는 아직 저희가 직접 산 옷을 입고 촬영했는데, 지금 보면 귀엽다고 생각해요.
そういうところから、だんだんセットが組まれたり、見たこともないような大きなカメラを使うようになっていって。
그런 데에서 시작해서 점점 세트가 만들어지기도 하고, 본 적도 없는 것 같은 커다란 카메라를 사용하게 되기도 했어요.
たしか「スノースマイル」の時はロッジみたいなところにみんなで泊まりました。
아마 「スノースマイル」 때는 산장 같은 곳에 다 같이 묵었던 것 같아요.
それも楽しかったです。
그것도 즐거웠어요.
「メロディーフラッグ」も良かったです。
「メロディーフラッグ(멜로디 플래그)」도 좋았어요.
屏風ヶ浦の海沿いの崖みたいなところに行って。
뵤부가우라의 바닷가 절벽 같은 곳에 갔어요.
その崖の端の方まで行って、藤原くんと2人でお互いが支え合うようなシンメトリーの形を作って遊んでましたね。
그 절벽 가장자리까지 가서 후지와라 군과 둘이 서로를 받쳐주는 것 같은 대칭 형태를 만들며 놀았어요.
その姿をチャマに写真に撮ってもらったりして。
그 모습을 챠마에게 사진으로 찍어달라고 하기도 했고요.
それが今、僕らのことをチャマが撮ってSNSに上げてる面白い写真のはしりのような気もします。
그게 지금 챠마가 저희를 찍어서 SNS에 올리는 재미있는 사진들의 시초 같은 느낌도 듭니다.
――では最後に聞かせてください。
――그럼 마지막으로 여쭤보겠습니다.
BUMP OF CHICKENの最初の10年、特にメジャーデビューからの5年あまりは、バンドにとって、そして増川さんご自身にとってどういう期間だったと思いますか?
BUMP OF CHICKEN의 첫 10년, 특히 메이저 데뷔 이후 약 5년은 밴드에게, 그리고 마스카와 씨 본인에게 어떤 기간이었다고 생각하시나요?
増川:嵐の大海原を笑顔で漕いでいくみたいな感じだったんですよね。
마스카와: 폭풍이 이는 드넓은 바다를 웃으면서 노 저어 가는 것 같은 느낌이었어요.
先のことは分かんないけど、とにかく次の波をゲラゲラ笑いながら越えていく、みたいな。
앞으로 어떻게 될지는 모르지만, 어쨌든 다음 파도를 깔깔 웃으면서 넘어가는, 그런
楽しいだけの時間ではないんですけど、とにかくものすごく大きな風とか流れを乗り越えていったような時代だったなと。
즐겁기만 한 시간은 아니었지만, 어쨌든 엄청나게 거대한 바람이나 흐름을 헤쳐 나갔던 시대였다고 생각해요.
そして、たぶん傍から見たら振り落とされそうな俺がいたんじゃないですかね。
그리고 아마 옆에서 봤다면 금방이라도 떨어져 나갈 것 같은 제가 있었던 게 아닐까요.
やっぱり1人じゃとても無理だっただろうし、前は「青春」という言葉を使ったと思うんですけれど、だんだんと友達同士の青春というだけのところから、何か確固たるもの、目指すものが生まれていったと思います。
역시 혼자였다면 도저히 불가능했을 것이고, 예전에는 ‘청춘’이라는 말을 사용했던 것 같은데, 점점 단순히 친구들끼리의 청춘이라는 데에서 벗어나 무언가 확고한 것, 목표로 삼는 것이 생겨났다고 생각합니다.
取材・文 / 柴那典
취재·글 / 시바 토모노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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