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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성 30주년 기념 특별 인터뷰 「BUMP OF CHICKEN HISTORY #2」 마스 히데오편 번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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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UMP OF CHICKEN official websit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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それまでの自分たちはモノを知らなすぎた
그때까지의 우리는 아는 것이 너무 없었다



――1999年3月に1stアルバム『FLAME VEIN』がリリースされました。
――1999년 3월에 1st 앨범 『FLAME VEIN』이 발매됐습니다.

その頃のバンドの状況についてはどんな風に感じていましたか?
그 무렵 밴드의 상황에 대해서는 어떻게 느끼고 있었나요?

升:ライブがすごく多い時期でしたね。
마스: 라이브가 굉장히 많았던 시기였네요.

チャートに絡むわけじゃないのでCDのセールスがどれくらいかはわからないですけど、動員は着実に増えてきてました。
차트에 오르는 것도 아니었기 때문에 CD 판매량이 어느 정도였는지는 모르겠지만, 관객 수는 꾸준히 늘고 있었습니다.

特に千葉のライブハウスだと前列にいるのは友達や知り合いが多かったんですけど、だんだん知らない人が増えてきて。
특히 치바의 라이브하우스에서는 앞줄에 있는 사람들이 친구나 아는 사람이 많은 편이었는데, 점점 모르는 사람들이 늘어났고

当時の自分たちよりちょっと上、20代後半ぐらいの人が多くなった感じがありました。
당시의 저희보다 조금 나이가 많은, 20대 후반 정도의 사람들이 많아진 느낌이 있었어요.

対バンのライブで他のバンドを観ていた人たちが、自分たちのライブを観に来てくれるようになったんだと思います。
합동 공연에서 다른 밴드를 보던 사람들이 저희 라이브도 보러 와주게 된 것 같습니다.

――徐々にバンドの存在が広がっていった。
――점차 밴드의 존재가 알려져 갔던 거군요.

升:「ランプ」がSPACE SHOWER TVでパワープッシュになってガンガン流れてたので、そういう影響もあったのかな。
마스: 「ランプ(램프)」가 SPACE SHOWER TV에서 파워 푸시로 선정돼서 계속 많이 나왔기 때문에, 그런 영향도 있었던 걸까요.

前回のインタビューで「毎回ライブの時にアンケートを配って、そこに住所書いてもらって、次のライブの告知を送ってた」という話をしたんですけれど、その数がめちゃくちゃ増えていった時期ですね。
지난번 인터뷰에서 “매번 라이브 때 설문지를 나눠주고, 거기에 주소를 적어달라고 해서 다음 라이브 안내를 보내고 있었다”는 이야기를 했는데, 그 수가 엄청나게 늘어나던 시기였어요.

そういう自分たちでやってきた地道なプロモーション活動がしっかりと実を結んできたんだと思います。
그렇게 저희가 직접 해오던 꾸준한 프로모션 활동이 제대로 결실을 맺기 시작한 것 같아요.

で、だんだん「もう自分たちでやらなくていいんじゃない?」ってなってきた。
그러다가 점점 “이제 우리가 직접 안 해도 되는 거 아니야?”라는 이야기가 나오게 됐고요.

大阪とか福岡とか、地方でライブをするようになったのもこの頃ですね。
오사카나 후쿠오카 같은 지방에서 라이브를 하게 된 것도 이 무렵이었어요.

もちろんその頃はまだ俺らのことを知っている人はほとんどいなかったんですけれど、それでも少しはいることにびっくりしました。
물론 그때는 아직 저희를 알고 있는 사람이 거의 없었지만, 그래도 조금은 있다는 사실에 놀랐습니다.

――当時の下北沢のギターロックシーンで頭角を現していく時期だったと思うんですが、そのあたりの実感はどうでした?
――당시 시모키타자와의 기타 록 씬에서 두각을 나타내기 시작하던 시기였다고 생각하는데, 그 부분에 대한 실감은 어땠나요?

升:当時は、サウンドやファッションも含めて、UKロックに影響を受けた人が多かったような気がします。
마스: 당시에는 사운드나 패션까지 포함해서 UK 록의 영향을 받은 사람들이 많았던 것 같아요.

対バンのブッキングもそういう人たちが多かった感じですね。
합동 공연 부킹도 그런 사람들이 많았던 느낌이었어요.

ただ、自分たちがその中にカテゴライズされていることについては、あんまりどうこう考えていなくて。
다만 저희가 그 안에서 어떤 카테고리로 분류되고 있다는 것에 대해서는 별로 이것저것 생각하지 않았어서.

当時はメロコアも流行ってたはずだけど、あんまりゴリゴリのパンクの人たちとやった記憶はないかな。
당시에는 멜로딕 하드코어도 유행했을 텐데, 아주 강한 펑크 계열 사람들과 같이 했던 기억은 별로 없는 것 같아요.

――この頃、升さんは大学生だったと思います。
――이 무렵 마스 씨는 대학생이었던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その時の将来像はどんな感じでしたか?
그때 그리던 미래상은 어떤 느낌이었나요?

升:1999年は大学2年目ですね。
마스: 1999년은 대학 2년 차였어요.

大学には運良く滑り込めたので、ちゃんと卒業を目指しつつ、とりあえず4年間は好きにバンドもできるだろうという感じでした。
운 좋게 대학에 들어갈 수 있었기 때문에 제대로 졸업을 목표로 하면서도, 일단 4년 동안은 마음껏 밴드를 할 수 있겠다는 느낌이었습니다.

ありがたいことに、メンバーにもスタッフにも、学校の融通は利かせてもらっていたので。
감사하게도 멤버들과 스태프 모두 학교 일정에 맞춰 배려해주고 있었고요.

その時考えていたのはそれくらいでした。
그때 생각하고 있던 건 그 정도였어요.

――升さんにとっては、そこからバンドとの向き合い方のターニングポイントになったのはいつぐらいでしたか?
――마스 씨에게 그 이후 밴드를 대하는 방식의 터닝 포인트가 된 것은 언제쯤이었나요?

升:やっぱり、TOY’S FACTORYと契約した時ですかね。
마스: 역시 TOY’S FACTORY와 계약했을 때였던 것 같아요.

ちゃんとレコード会社と契約して「これでいける」っていう感じでした。
제대로 레코드 회사와 계약하고 “이걸로 갈 수 있겠다”는 느낌이었습니다.

――1999年から2000年にかけては、いろんな出会いがあったと思います。
――1999년부터 2000년에 걸쳐 여러 만남이 있었던 것 같네요.

振り返って、誰とのどんな出会いが大きかったと思いますか?
돌아봤을 때 누구와의 어떤 만남이 컸다고 생각하시나요?

升:いっぱいありすぎて一人に絞れないですけど……それまでの自分たちはモノを知らなすぎたというのがあって。
마스: 너무 많아서 한 사람으로 좁힐 수는 없지만... 그때까지의 저희는 아는 것이 너무 없었다는 게 있었어요.

特に自分は単純にドラマーとしてどういうプレイをすればいいのかを全然知らなかったんですね。
특히 저는 단순히 드러머로서 어떤 연주를 해야 하는지조차 전혀 몰랐어요.

でも、前回のインタビューでも話した女性のスタッフに出会って、そこから「今日の演奏はイマイチだったからセッティング見直してみよう」とアドバイスしてもらったり。
하지만 지난번 인터뷰에서도 이야기한 여성 스태프를 만나고 나서 “오늘 연주는 좀 별로였으니까 세팅을 다시 한번 검토해보자” 같은 조언을 받기도 했고.

他にも、いろんな人にいろいろなことを教わった時期でしたね。
그 밖에도 여러 사람에게 여러 가지를 배웠던 시기였어요.

――たとえばどんな方に?
――예를 들면 어떤 분들에게요?

升:ハックルベリーフィンは何回か対バンも一緒にしていたし、めちゃくちゃ上手かったんで、「あれ、どうやってんの?」って聞いたりしてました。
마스: Huckleberry Finn과는 몇 번 합동 공연도 같이 했고, 정말 잘했기 때문에 “그거 어떻게 하는 거야?”라고 물어보기도 했어요.

その時はまだ拾ったドラムセットを使っていたんですけど、ペダルは自分で買ったものを使っていて。
그때는 아직 주워온 드럼 세트를 사용하고 있었지만, 페달은 제가 직접 산 것을 사용하고 있었는데

「調子悪いんだよね」って言ったら、ハックルベリーフィンのドラムのハジ(ヤマグチユキヒコ)くんが「いらないのあるから、このペダル使っていいよ」って言ってくれたり。
“상태가 안 좋아”라고 말했더니 Huckleberry Finn의 드러머 하지(야마구치 유키히코) 군이 “안 쓰는 게 있으니까 이 페달 써도 돼”라고 말해주기도 했고요.

いろいろ周りに助けてもらってた感じですね。
여러모로 주변 사람들에게 도움을 받고 있었던 느낌이네요.

音楽に関しても、高校生の時は友達が教えてくれてたけど、スタッフたちは世代も上だし音楽に詳しいので、昔の曲を教えてくれて。
음악에 관해서도 고등학생 때는 친구들이 알려줬지만, 스태프들은 세대도 더 위이고 음악에도 밝았기 때문에 옛날 곡들을 알려줬어서.

同世代のバンドでも、たとえばBURGER NUDSに海外のインディーズのバンドを教えてもらったり。
같은 세대의 밴드 중에서도 예를 들면 BURGER NUDS에게 해외 인디 밴드를 추천받기도 했고요.

その時は全然ピンとこなかったけど、その20年後くらいにAmerican Footballを聴いた時に「そういえば、これ、あの時にBURGER NUDSが教えてくれたやつだ」って思ったりしました。
그때는 전혀 와닿지 않았지만, 그로부터 약 20년 뒤 American Football을 들었을 때 “그러고 보니 이거, 그때 BURGER NUDS가 알려줬던 거네”라고 생각하기도 했습니다.

ライブの打ち上げとかには出るタイプでは全然なかったんですけど、そういうちょっとしたつながりでも、いろいろ広がりが生まれてきた頃で。
라이브 뒤풀이 같은 데에 나가는 타입은 전혀 아니었지만, 그런 작은 인연을 통해서도 여러 가지가 넓어지기 시작한 시기였어서.

そういう意味でも、世界が広がっていく感じはありました。
그런 의미에서도 세상이 넓어져 가는 느낌이 있었습니다.

原始人みたいに、ひとつひとつグルーヴを発見していった
원시인처럼 하나하나 그루브를 발견해 갔다



――2000年3月には『THE LIVING DEAD』がリリースされました。
――2000년 3월에는 『THE LIVING DEAD』가 발매됐습니다.

当時のインタビューでもかなり制作期間が短かったということを言っていましたが、どんな記憶が残っていますか?
당시 인터뷰에서도 제작 기간이 상당히 짧았다고 이야기했는데, 어떤 기억이 남아 있나요?

升:『FLAME VEIN』の次のアルバムを作ろうとなって、スケジュールが押さえてあって。
마스: 『FLAME VEIN』 다음 앨범을 만들자고 해서 일정이 이미 잡혀 있었어요.

でも曲がない、曲があっても歌詞がまだない、という状態で始まったレコーディングでした。
하지만 곡이 없고, 곡이 있어도 가사는 아직 없는 상태에서 시작한 레코딩이었어요.

1週間くらいでいろんな曲を並行してバーッと録っていったんで、最初に「グングニル」を録ったことくらいしか記憶がないんですよね。
일주일 정도 동안 여러 곡을 병행해서 한꺼번에 녹음했기 때문에, 처음에 「グングニル(궁니르)」를 녹음했다는 것 정도밖에 기억이 없어요.

ずっとスタジオにいて、誰かが何かをやっていて、寝てる時もある。
계속 스튜디오에 있고, 누군가는 뭔가를 하고 있고, 누군가는 자고 있을 때도 있고요.

そういう感じで進めてましたね。
그런 식으로 진행했어요.

ミックス作業を待ちながらテレビを観たりゲームをやったりする時間とかもあったんですけど。
믹스 작업을 기다리면서 TV를 보거나 게임을 하는 시간도 있었고요.

――アルバムを振り返って、升さんとして思い入れの強い曲は?
――앨범을 돌아봤을 때 마스 씨가 특히 애착을 가진 곡은 무엇인가요?

升:そういう作り方だったんで、どういう経緯で作っていったか思い出せる曲は少ないんですけど、「リリィ」に関しては、スタジオで何回かリハーサルして、アレンジをみんなでセッション的に作っていった記憶があります。
마스: 그런 방식으로 만들었기 때문에 어떤 과정을 거쳐서 만들었는지 기억나는 곡은 적지만, 「リリィ(릴리)」에 관해서는 스튜디오에서 몇 번 리허설을 하고, 편곡을 모두가 세션하듯 만들어갔던 기억이 있습니다.

誰かの発案で「四つ打ちにしようぜ」って言ってやり始めて、何かの拍子に裏打ちを入れたら「これ、すごく気持ちいいな」って気付いて。
누군가의 제안으로 “4비트 킥으로 해보자”라고 하면서 시작했고, 어떤 계기로 오프비트 악센트를 넣었더니 “이거 굉장히 기분 좋은데”라고 깨달았어요.

ほんとに原始人みたいに、ひとつひとつグルーヴを発見していった感じだと思うんですけれど。
정말 원시인처럼 하나하나 그루브를 발견해간 느낌이었다고 생각하지만

それが俺にとっては、プレイするほうでの四つ打ちの原体験だった。
그게 저에게는 연주하는 입장에서의 4비트 킥에 대한 원체험이었어요.

その感じが、その後の「天体観測」につながっていったというのはありますね。
그 느낌이 이후의 「天体観測(천체관측)」으로 이어졌다는 점은 있어요.

――この時期は、ソングライターとしての藤原さんの手札、メンバーの演奏の幅、音楽的な方法論が少しずつ増えていく時期であったと。
――이 시기는 송라이터로서 후지와라 씨가 가진 수단, 멤버들의 연주 폭, 음악적인 방법론이 조금씩 늘어나던 시기였던 거군요.

升:そうですね。
마스: 그렇죠.

だからリズムやグルーヴ的には、初期はGreen Day直系のシンコペーションの効いたエイトビートがまずあって。
그래서 리듬이나 그루브 면에서는 초기에 우선 Green Day 직계라고 할 만한 싱코페이션이 강조된 8비트가 있는데.

「くだらない唄」とか「ナイフ」でUKロック的な16ビートが加わり、「リリィ」で四つ打ちという持ち札が増えたという感じで。
「くだらない唄(시시한 노래)」이나 「ナイフ(나이프)」에서 UK 록적인 16비트가 더해지고, 「リリィ(릴리)」에서 4비트 킥이라는 패가 하나 늘어난 느낌이었어요.

その発展形に「天体観測」がある感じがします。
그 발전형으로 「天体観測(천체관측)」이 있는 느낌이에요.

当時はできもしないのに、いろいろ新しいことをやってましたね。
당시에는 제대로 하지도 못하면서 여러 새로운 것을 시도하고 있었어요.

いろいろ教えてもらって、知識とか情報が増えていく中で「これ、やってみよう」みたいなのがまず先にあって。
여러 가지를 배우면서 지식이나 정보가 늘어나는 가운데 우선 “이거 한번 해보자” 같은 생각이 먼저 있었어요.

「Ever lasting lie」は、使ったこともないのにブラシでやってみたり、手で叩く人もいるらしい、みたいなのをビデオで見てやってみたり。
「Ever lasting lie」에서는 써본 적도 없으면서 브러시를 사용해보기도 하고, 손으로 두드리는 사람도 있는 것 같다는 걸 비디오에서 보고 따라 해보기도 했고

いろんなことを試してました。
여러 가지를 시험하고 있었습니다.

4人揃ってその場が楽しいから全然オッケー
네 명이 함께 있고 그 자리가 즐거우니까 전혀 문제없었다


――このあたりから雑誌の取材やラジオの出演も増えていきましたが、このあたりはどんな感じでしたか?
――이 무렵부터 잡지 취재나 라디오 출연도 늘어났는데, 이 부분은 어떤 느낌이었나요?

升:当時は、なんでそれをやってるのかよくわからずにやってた感じですね。
마스: 당시에는 왜 그걸 하고 있는지도 잘 모른 채 하고 있었던 느낌이에요.

プロモーション全般の意義がわかっていなくて。
프로모션 전반의 의미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어서

「やって」と言われて、とりあえず4人揃ってその場が楽しいから全然オッケーみたいな感じで。
“해줘”라는 말을 듣고, 일단 네 명이 함께 있고 그 자리가 즐거우니까 전혀 문제없다는 느낌으로

柴さんの古巣の『ROCKIN’ON JAPAN』に初登場した時も、そういう感じだったと思います。
시바 씨가 예전에 몸담았던 『ROCKIN’ON JAPAN』에 처음 등장했을 때도 그런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当時は新入社員だったんですけど、ハッキリ覚えてます。
――당시 저는 신입사원이었는데,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オフィスに入ってきた瞬間から帰るまで、ずっとハイテンションだった。
사무실에 들어온 순간부터 돌아갈 때까지 계속 텐션이 높았어요.

升:爪痕を残したかったんでしょうね。
마스: 뭔가 강렬한 인상을 남기고 싶었던 거겠죠.

お互いマウントを取り合うというか、「俺のほうがこんなことをしてやった」みたいな感じで、いろいろやってましたね。
서로 기싸움을 한다고 해야 할까요, “내가 더 이런 것도 해냈다” 같은 느낌으로 여러 가지를 하고 있었어요.

ラジオもずっとクロストークで、「俺が!俺が!」っていう感じだったと思います。
라디오에서도 계속 서로 말이 겹치는 크로스토크였고, “내가! 내가!” 하는 느낌이었던 것 같아요.

――「ツアーポキール」もありましたが、ツアーの体験ってどういうものでしたか?
――「ツアーポキール(투어 포킬)」도 있었는데, 투어의 경험은 어떤 것이었나요?

升:当時は泊まるのも4人部屋だったんですよね。
마스: 당시에는 숙박도 네 명이 한 방을 썼어요.

だから、ああいうテンションのまま、前日も遅くまで起きていろんなバカ話をしたり、誰かが風呂入ってる時に誰かがいたずらを仕掛けたり、そんな感じでした。
그래서 그런 텐션 그대로 전날에도 늦게까지 깨어서 여러 바보 같은 이야기를 하거나, 누군가 목욕하고 있을 때 누군가 장난을 치거나, 그런 느낌이었어요.

――メジャーデビューは、どんな経緯で決まっていったんでしょうか。
――메이저 데뷔는 어떤 경위로 결정되어 갔나요?

升:レコード会社と契約しようっていう話があって、その中でいろいろな縁があって。
마스: 레코드 회사와 계약하자는 이야기가 있었고, 그 과정에서 여러 인연이 있었어서.

「この人たちとやりたい」というのでTOY’S FACTORYになったんですね。
“이 사람들과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TOY’S FACTORY가 된 거죠.

TOY’S FACTORYのスタッフもいっぱいライブに来てくれていて、『THE LIVING DEAD』のレコーディングも見に来てくれたりとかもあったから。
TOY’S FACTORY 스태프들도 라이브에 많이 와주고 있었고, 『THE LIVING DEAD』 레코딩도 보러 와주기도 했으니까요.

とにかくこの人たちと仕事がしたいというので、TOY’S FACTORYと契約することになりました。
어쨌든 이 사람들과 일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TOY’S FACTORY와 계약하게 됐습니다.

――メジャーデビューが決まって、どんな反響がありました?
――메이저 데뷔가 결정되고 어떤 반응이 있었나요?

升:やっぱり、インディーズのBUMP OF CHICKENっていうところで見てた人も少なからずいたわけで。
마스: 역시 ‘인디즈의 BUMP OF CHICKEN’이라는 점에서 보고 있던 사람들도 적지 않게 있었어요.

スタンスは全然変わんないのになっていうのを自分たちでは思ってました。
저희는 스탠스는 전혀 변하지 않는데, 라고 생각했어요.

実際、メジャーになるぞっていっても、流通が変わるだけで、そんなに変わらなかったんですよね。
실제로 메이저가 된다고 해도 유통이 바뀔 뿐, 그렇게 크게 달라지지는 않았어요.

自分たちはあくまで、本当に聴いてほしい人に音楽を届けたいだけであって。
저희는 어디까지나 정말 들어주길 바라는 사람들에게 음악을 전하고 싶을 뿐이었어요.

だから「そんなに言うことかな」っていうのはありました。
그래서 “그렇게까지 말할 일인가?”라는 생각은 있었습니다.

その反動というか「だからなんだよ」みたいな気持ちで。
그 반작용이라고 해야 할까요, “그래서 어쩌라고” 같은 마음이었어요.

自分の楽器で鳴らしたい音が鳴らせた
내 악기로 내가 내고 싶었던 소리를 낼 수 있었다



――「ダイヤモンド」や「天体観測」、『jupiter』の制作時期、升さんとしてはどんなことを考え、どんなことを思っていた記憶がありますか?
――「ダイヤモンド(다이아몬드)」와 「天体観測(천체관측)」, 『jupiter』 제작 시기에 마스 씨는 어떤 것을 생각하고 어떤 마음을 가지고 있었던 기억이 있나요?

升:『THE LIVING DEAD』の時は圧倒的に時間がなかったので。
마스: 『THE LIVING DEAD』 때는 압도적으로 시간이 부족했기 때문에.

メジャーになって、ようやく自分のドラムセットを手に入れたのもあって、「出したい音を作るぞ」というやる気に満ちていて。
메이저가 되고 마침내 제 드럼 세트를 손에 넣게 된 것도 있어서, “내고 싶은 소리를 만들자”는 의욕으로 가득 차 있었어요.

結果、音作りに時間かかりすぎる、みたいな時期でしたね。
결과적으로는 사운드를 만드는 데 시간이 너무 많이 걸리는 시기였네요.

――このタイミングで自分のドラムセットを手に入れたんですね。
――이 시점에서 자신의 드럼 세트를 갖게 된 거군요.

升:そうなんです。
마스: 그렇습니다.

ようやく拾ったスネアじゃなくて自分で買ったやつを使うようになったんですよ。
드디어 주워온 스네어가 아니라 제가 직접 산 것을 사용하게 됐어요.

で、「ダイヤモンド」は「こういう音出したかったんだ」っていうことができて、満足感がありましたね。
그리고 「ダイヤモンド(다이아몬드)」에서는 “이런 소리를 내고 싶었던 거야”라는 걸 해낼 수 있어서 만족감이 있었어요.

ただ、その頃は経験も全然ないし、ただただ、時間がかかってました。
다만 그 무렵에는 경험도 전혀 없었기 때문에 그냥 시간이 많이 걸렸어요.

ドラムの音は楽器だけで決まるものじゃなくて。
드럼 소리는 악기만으로 결정되는 게 아니라

一番大きいのはやっぱり叩き手の技量だし、エンジニアさんとのコンセンサスをしっかりとって音を作っていくことも必要なんですけれど、そういうところが全くわかってなかったので。
가장 큰 것은 역시 연주자의 실력이고, 엔지니어와 제대로 합의를 맞추면서 사운드를 만들어가는 것도 필요한데, 그런 부분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었어요.

――ちなみに、ドラムセットを買うにあたって、メーカーとか色のこだわりはありました?
――참고로 드럼 세트를 살 때 메이커나 색에 대한 고집은 있었나요?

升:最初は自分の性格もあって「誰も持ってないようなやつがいい」みたいな逆張りの発想で選んでいて。
마스: 처음에는 제 성격도 있어서 “아무도 가지고 있지 않은 게 좋다” 같은 역발상으로 골랐어요.

「ダイヤモンド」で買ったのがファイヴスというメーカーのスネアだったんですけど、そこから巡り巡って、カノウプスになりました。
「ダイヤモンド(다이아몬드)」 때 산 것이 Five-S라는 메이커의 스네어였는데, 이런저런 과정을 거쳐 결국 CANOPUS를 사용하게 됐어요.

カノウプスは、クハラカズユキさんとか、アヒト・イナザワさんとか、自分が好きな日本のバンドのドラマーがこぞって使っていて。
CANOPUS는 쿠하라 카즈유키 씨나 아히토 이나자와 씨처럼 제가 좋아하는 일본 밴드의 드러머들이 많이 사용하고 있었어서

お店に行って叩いてみたら、すごく良かったんです。
가게에 가서 직접 쳐보니 정말 좋았습니다.

でも、いろんな人が使ってるドラムセットだったから、すでに他の人が使ってる色はカブっちゃうなって思って。
하지만 여러 사람이 사용하는 드럼 세트였기 때문에 이미 다른 사람이 쓰고 있는 색을 고르면 겹치겠다고 생각했어서

「あんまり使われてない色ってどれですか?」って聞いて、グリーンスパークルにしました。
“별로 많이 사용되지 않는 색은 어떤 건가요?”라고 물어서 그린 스파클로 골랐습니다.

ツアーごとに色を変えようと思ったときもあったんですけれど、結果、自分のアイデンティティの色になりましたね。
투어마다 색을 바꿔볼까 생각했던 때도 있었지만, 결과적으로는 제 아이덴티티의 색이 됐네요.

――「天体観測」についてはどうでしょう?
――「天体観測(천체관측)」에 대해서는 어떤가요?

制作やリリース後の反響を振り返って、どんな記憶がありますか。
제작 과정이나 발매 이후의 반응을 돌아봤을 때 어떤 기억이 있나요?

升:デモの段階でも「これは素晴らしい曲だ」と思って大事に作っていって。
마스: 데모 단계에서도 “이건 훌륭한 곡이다”라고 생각해서 소중하게 만들어갔어요.

スタッフがすごく盛り上がって、気合いが入ってる感じはありました。
스태프들이 굉장히 들떠 있었고, 힘이 잔뜩 들어가 있는 느낌은 있었습니다.

ただ、すぐにバーンってヒットしたというより、じわじわ売れていったんですよね。
다만 곧바로 확 하고 히트했다기보다는 서서히 팔려나갔어요.

ヒットチャートで1位になったとかじゃないけど、例えばふらっと入ったコンビニで曲が流れてたりして、「ちゃんとヒットしてるんだな」っていう体感はありましたね。
히트 차트에서 1위를 했다거나 한 건 아니지만, 예를 들어 우연히 들어간 편의점에서 곡이 흘러나오기도 해서 “제대로 히트하고 있구나”라는 실감은 있었어요.

――2002年2月には『jupiter』がリリースされました。
――2002년 2월에는 『jupiter』가 발매됐습니다.

アルバムを振り返って、升さんの個人的な思い入れがある曲、当時の光景が思い浮かぶ曲は?
앨범을 돌아봤을 때 마스 씨가 개인적으로 애착을 가진 곡, 당시의 풍경이 떠오르는 곡은 무엇인가요?

升:やっぱり「ダイヤモンド」ですね。
마스: 역시 「ダイヤモンド(다이아몬드)」네요.

さっき言った自分の楽器で鳴らしたい音が鳴らせたっていう喜びもあったし、こんな風にエンジニアさんとコミュニケーションをとって一緒に作れるんだなというのがわかったという。
아까 말한 것처럼 제 악기로 제가 내고 싶었던 소리를 낼 수 있었다는 기쁨도 있었고, 이런 식으로 엔지니어와 커뮤니케이션을 하면서 함께 만들 수 있는 거구나 하는 것도 알게 됐어요.

そういう意味では、それまでの作り方とは変わってきましたね。
그런 의미에서는 그때까지의 제작 방식과 달라지기 시작했어요.

――バンドがブレイクしたことによる環境の変化については、どんな風に感じてましたか?
――밴드가 크게 알려지면서 생긴 환경의 변화에 대해서는 어떻게 느끼고 있었나요?

升:ライブよりも、例えばラジオの公開収録で写真を撮られたり、そんなところから感じるものはありましたね。
마스: 라이브보다는 예를 들어 라디오 공개 녹화에서 사진을 찍히거나 하는 데에서 변화를 느끼는 부분이 있었어요.

いわゆるプロモーションとか、ライブとレコーディング以外のいろんなことがだんだん増えてきて、それが自分にとってどういう意味を成すのかいまいち把握できないまま、そういう仕事をしてた気がします。
이른바 프로모션이라든가, 라이브와 레코딩 이외의 여러 일이 점점 늘어나면서 그것이 저에게 어떤 의미를 가지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채 그런 일을 하고 있었던 것 같아요.

周りの環境は全く違うんだけど、自分たちの精神性自体は全く変わっていないっていう。
주변 환경은 완전히 달라졌는데, 저희의 정신적인 부분 자체는 전혀 변하지 않았다는 거죠.

そこのギャップで混乱してた部分もあったような気がしますね。
그 사이의 괴리 때문에 혼란스러워했던 부분도 있었던 것 같아요.

卒業式の日にトイレで寝落ちして、気付いたら真っ暗でした
졸업식 날 화장실에서 잠들어버렸는데, 정신을 차려보니 깜깜했어요



――升さんの大学卒業が2002年3月でしたが、その頃の大学生活はどんな感じでしたか?
――마스 씨가 대학을 졸업한 것이 2002년 3월이었는데, 그 무렵 대학 생활은 어떤 느낌이었나요?

升:大学は2000年ぐらいまでは結構行ってたんですけど、そこで大体単位を取り切ったので。
마스: 대학은 2000년 정도까지는 꽤 다녔는데, 그때 웬만한 학점을 거의 다 따놨어요.

「天体観測」以降あたりは、あんまり関係なかった感じですね。
「天体観測(천체관측)」 이후쯤에는 대학이 별로 크게 관계없는 느낌이었어요.

週に2回行って、テストを受けて、バンドやりつつ大学も行ってたくらいのバランスでした。
일주일에 두 번 정도 가서 시험을 보고, 밴드를 하면서 대학도 다니는 정도의 균형이었습니다.

で、たしか『オールナイトニッポン』の後に卒業式だったんです。
그리고 아마 『올나이트 닛폰』 방송 뒤에 졸업식이 있었어요.

――当時は『BUMP OF CHICKENのオールナイトニッポンR』のレギュラー出演もありましたね。
――당시에는 『BUMP OF CHICKEN의 올나이트 닛폰 R』 정규 출연도 있었죠.

升:毎週火曜日の深夜に生放送でやっていたんで、大変でしたね。
마스: 매주 화요일 심야에 생방송으로 하고 있었기 때문에 힘들었어요.

いつも深夜12時くらいにニッポン放送に集まって、タクシーチケットをもらってタクシーで帰る、みたいな感じで。
항상 밤 12시쯤 닛폰방송에 모여서 택시 티켓을 받고 택시로 돌아가는 식이었어요.

で、その日はラジオが終わって、家に帰ってからスーツに着替えて卒業式に行って。
그리고 그날은 라디오가 끝난 뒤 집에 돌아와서 정장으로 갈아입고 졸업식에 갔고

卒業証書をもらった後に、謝恩会的な集まりがあって。
졸업장을 받은 뒤 사은회 같은 모임이 있었고요.

その後に二次会に行く人は行って、家に帰る人は帰るみたいな感じだったんですけれど。
그 뒤에 2차를 갈 사람은 가고, 집에 돌아갈 사람은 돌아가는 식이었는데

その時にトイレに行って、個室入ったらそこで寝落ちしちゃって。
그때 화장실에 가서 칸 안에 들어갔는데 거기서 잠들어버렸어요.

気づいたら真っ暗で「やべえ」ってなって。
정신을 차려보니 깜깜해서 “큰일 났다” 싶어서

ちょうど用務員さんが校舎の鍵を閉める直前で、危うく閉じ込められるところだったんですよ。
마침 관리인이 교사 문을 잠그기 직전이라 하마터면 안에 갇힐 뻔했어요.

みんなはもうとっくに帰ってて、友達に電話したら、「お前、だいたい授業の後にライブやってたりするから、そういう感じかと思って置いて帰ってきた」って言われて。
다들 이미 한참 전에 돌아간 뒤였고, 친구에게 전화했더니 “너는 보통 수업 끝나고 라이브 하러 가곤 하니까 그런 건 줄 알고 그냥 두고 돌아왔어”라는 말을 들었어요.

で、帰ろうと思って。
그래서 집에 가려고 했는데

で、またトイレ行きたくなって。
또 화장실에 가고 싶어져서

隣駅のデパートのトイレの個室でまた寝落ちして「閉店です」って言われて起こされた。
옆 역 백화점 화장실 칸에서 또 잠들어버려서 “폐점입니다”라는 말을 듣고 깨어났어요.

ヤバかったですね(笑)。
큰일이었죠(웃음).

それだけ忙しかったってことだと思います。
그만큼 바빴다는 뜻이라고 생각해요.

――2002年8月には「B.O.C Presents BAUXiTE page1」でハックルベリーフィン、BURGER NUDS、Syrup16gとの対バンツアーをやっています。
――2002년 8월에는 「B.O.C Presents BAUXiTE page1」에서 Huckleberry Finn, BURGER NUDS, Syrup16g와 함께 합동 공연 투어를 했습니다.

当時のバンドシーンの中で象徴的な並びだと思うんですが、彼らとはどんな風に仲良くなっていった感じでしょうか?
당시 밴드 씬 안에서 상징적인 라인업이라고 생각하는데, 그들과는 어떤 식으로 친해져 갔나요?

升:単純にライブを観て、楽曲とパフォーマンスが好きになって、という感じでした。
마스: 단순히 라이브를 보고, 곡과 퍼포먼스를 좋아하게 된 느낌이었습니다.

年もそんなに離れてないし、普通に話してて楽しいし。
나이 차이도 그렇게 크지 않았고, 그냥 이야기하는 것도 즐거웠고요.

「BAUXiTE」は貴重な対バンツアーができたなと思いますね。
「BAUXiTE」에서는 귀중한 합동 공연 투어를 할 수 있었다고 생각해요.

いろんなところで対バンをやってきて、戦友的な気持ちもあったと思います。
여러 곳에서 함께 공연해왔기 때문에 전우 같은 마음도 있었던 것 같아요.

で、ファイナルが高知だったんですけど、そこはすっかり打ち上げっぽい感じでしたね。
그리고 파이널이 고치였는데, 그곳은 완전히 뒤풀이 같은 분위기였어요.

カツオの叩きを食べたりとか、みんなで花火をやったりして。
가다랑어 타타키를 먹기도 하고, 다 같이 불꽃놀이를 하기도 했고요.

こういう風に今まで一緒にやってきた人たちと対バンツアーを回るというのはなかったんで、とにかく楽しかったですね。
이런 식으로 그동안 함께 해온 사람들과 합동 공연 투어를 도는 일은 없었기 때문에, 어쨌든 정말 즐거웠어요.

――2004年には地元の佐倉市民体育館で招待制のフリーライブもありました。
――2004년에는 고향인 사쿠라시 시민체육관에서 초대제 무료 라이브도 있었습니다.

これはどんな思い出がありますか?
이건 어떤 추억이 남아 있나요?

升:これはスタッフからの提案だったんですけど、古い友達も来てくれたし、学校の先生も来てくれたし、やっぱり感慨深かったです。
마스: 이건 스태프의 제안이었는데, 오래된 친구들도 와줬고 학교 선생님들도 와주셔서 역시 감회가 깊었어요.

そもそもライブをやるような場所じゃなかったし、あそこでやらせてもらったのは本当にありがたかったですね。
애초에 라이브를 하는 그런 장소도 아니었고, 그곳에서 공연할 수 있게 해준 것이 정말 감사했어요.

ただ、始まってわりとすぐに床が抜けてしまって。
그런데 공연이 시작되고 금방 바닥이 내려앉아버렸어서

スペシャの中継も入ってたのに、ずっとMVが流れているという。
스페이스 샤워 TV의 중계도 들어와 있었는데, 계속 MV만 흘러나오는 상황이 됐어요.

今思えば、誰も怪我しなくて本当によかったと思います。
지금 생각하면 아무도 다치지 않아서 정말 다행이었다고 생각합니다.

――2004年には韓国の「Busan International Rock Festival」の出演もありました。
――2004년에는 한국의 「Busan International Rock Festival」에도 출연했습니다.

海外での初ライブはどういう経験でしたか?
해외에서의 첫 라이브는 어떤 경험이었나요?

升:釜山は海水浴場みたいな場所で、面白い会場でしたね。
마스: 부산은 해수욕장 같은 장소여서 재미있는 공연장이었어요.

で、言葉が違ってもちゃんと音楽が伝わってるのが客席から感じられて。
그리고 언어가 달라도 음악이 제대로 전해지고 있다는 게 객석에서 느껴졌고요.

それもすごく嬉しかったですね。
그것도 정말 기뻤네요.

藤くんに「鹿の筋肉みたいにやってよ」みたいなことを言われて
후지 군에게 “사슴의 근육 같은 느낌으로 해줘” 같은 말을 듣고



――2004年8月には『ユグドラシル』がリリースされました。
――2004년 8월에는 『ユグドラシル(유그드라실)』이 발매됐습니다.

アルバムの制作を振り返って、どんな記憶が残っていますか?
앨범 제작을 돌아봤을 때 어떤 기억이 남아 있나요?

升:『ユグドラシル』を作るぐらいの時からアメリカ人の先生にドラムを習うようになったんです。
마스: 『ユグドラシル(유그드라실)』을 만들 무렵부터 미국인 선생님에게 드럼을 배우기 시작했습니다.

このあたりから藤くんの書く曲のリズムの幅もどんどん広がっていって。
이 무렵부터 후지 군이 쓰는 곡의 리듬 폭도 점점 넓어졌어요.

「乗車権」の変拍子的なリズムとか、「embrace」とか「fire sign」とか「スノースマイル」の跳ねてる感じとかもそうだし。
「乗車権(승차권)」의 변박자 같은 리듬이나, 「embrace」나 「fire sign」이나 「スノースマイル(스노 스마일)」의 튀는 듯한 리듬감도 그렇고요.

自分にない手札をどんどん増やしていった時期ですね。
제게 없던 수단을 계속 늘려가던 시기였어요.

――それまでは独学だったドラムを、プレイヤーとして捉え直そうという感じがあった。
――그때까지 독학으로 해오던 드럼을 연주자로서 다시 바라보려는 느낌이 있었던 거군요.

升:そうです。
마스: 그렇습니다.

それまでいろんな人に断片的に教えてもらったり、聞いたりしていたのが、しっかり人について習うようになりました。
그때까지는 여러 사람에게 단편적으로 배우거나 물어봤던 것을, 제대로 한 사람에게 붙어서 배우기 시작했어요.

『ユグドラシル』は、それまでやったことないものをどんどんやっていった感じでしたね。
『ユグドラシル(유그드라실)』은 그때까지 해본 적 없는 것을 계속 시도해간 느낌이었어요.

「ロストマン」でドラムを重ねてみたり、「車輪の唄」でブラシプレイをしてみたり。
「ロストマン(로스트맨)」에서는 드럼을 겹쳐 녹음해보기도 하고, 「車輪の唄(차륜의 노래)」에서는 브러시 연주를 해보기도 했어요.

あくまでその曲が求めるものですけれど、そうやってドラマーとしてのいろいろな幅にチャレンジしていた感じです。
어디까지나 그 곡이 요구하는 것이었지만, 그렇게 드러머로서 여러 가지 폭에 도전하고 있던 느낌이에요.

――『ユグドラシル』で升さんの思い入れの強い曲、当時の光景が思い浮かぶ曲を挙げるならば?
――『ユグドラシル(유그드라실)』에서 마스 씨가 특히 애착을 가진 곡, 당시의 풍경이 떠오르는 곡을 꼽는다면 무엇인가요?

升:「車輪の唄」のブラシプレイは「できるの?」って感じだったんですけれど、やってみたら結構いい感じになりましたね。
마스: 「車輪の唄(차륜의 노래)」의 브러시 연주는 “할 수 있나?” 싶은 느낌이었는데, 해보니 꽤 좋은 느낌이 됐어요.

あと、「オンリー ロンリー グローリー」はレコーディングで藤くんに「鹿の筋肉みたいにやってよ」みたいなことを言われて、一生懸命やった覚えがあります。
그리고 「オンリー ロンリー グローリー(온리
론리 글로리)」는 레코딩에서 후지 군에게 “사슴의 근육 같은 느낌으로 해줘” 같은 말을 듣고 필사적으로 했던 기억이 있습니다.

すごく時間がかかったけど、グルーヴィーに仕上がったなと思います。
굉장히 시간이 오래 걸렸지만, 그루비하게 완성됐다고 생각해요.

「sailing day」は仮デモがない状態で、レコーディングでもクリックに対してドラムから録るというやり方をして。
「sailing day」는 임시 데모가 없는 상태에서, 레코딩에서도 클릭에 맞춰 드럼부터 녹음하는 방식으로 작업했어요.

大変だったのを覚えてます。
힘들었던 게 기억납니다.

――この年にはツアー「MY PEGASUS」も開催されました。
――이 해에는 투어 「MY PEGASUS」도 개최됐습니다.

この頃のツアーについてはどんな記憶がありましたか?
이 무렵의 투어에 대해서는 어떤 기억이 있나요?

升:この頃は、午前中にどこかに遊びにいってましたね。
마스: 이 무렵에는 오전에 어딘가 놀러 가곤 했어요.

鹿児島のライブが終わった後、指宿の砂蒸しに行ったら、翌日にだるくなったり。
가고시마 라이브가 끝난 뒤 이부스키의 모래찜질에 갔다가 다음 날 몸이 나른해지기도 했고요.

今だったら絶対しないようなこともしてました。
지금이라면 절대 하지 않을 것 같은 일도 했어요.

身体のことを何も気にしなくても大丈夫だった頃ですね。
몸 상태를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아도 괜찮았던 시기였어요.

――そして12月にはツアーファイナル「PEGASUS YOU」が幕張メッセで開催されました。
――그리고 12월에는 투어 파이널 「PEGASUS YOU」가 마쿠하리 멧세에서 개최됐습니다.

当時としては最大規模のライブだったと思いますが、どうでしたか?
당시로서는 최대 규모의 라이브였다고 생각하는데, 어땠나요?

升:2daysだったんですけど、個人的に1日目は完全に飲まれてガチガチでした。
마스: 2days였는데, 개인적으로 첫날은 완전히 분위기에 압도돼서 몸이 굳어 있었어요.

ちゃんと1対1で音楽を届けようと思ってツアーをやってきたんですけれど、飲まれてしまったのはすごく悔しくて。
제대로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음악을 전달하겠다는 생각으로 투어를 해왔는데, 분위기에 압도돼버린 것이 굉장히 분했어요.

2日目もビビってましたけれど、しっかり前を向いて、ちゃんとメンバーを見て、お客さんの顔を見てやりましたね。
둘째 날도 겁을 먹고 있었지만, 제대로 앞을 보고, 멤버들을 보고, 관객의 얼굴을 보면서 연주했네요.

ライブをする時のマインドをちゃんと自分の中に確信的に持ってないといけないなって、改めて思い知りましたね。
라이브를 할 때의 마음가짐을 제 안에 확고하게 가지고 있어야 한다는 걸 다시 한번 절실히 깨달았어요.

もちろんそれまでもそういう気持ちはあったと思うんですけれど、その意識を確認するきっかけになったと思います。
물론 그전에도 그런 마음은 있었겠지만, 그 의식을 다시 확인하는 계기가 됐다고 생각합니다.

――『jupiter』から『ユグドラシル』の時期を振り返って、升さんにはどういう変化があったと思いますか?
――『jupiter』에서 『ユグドラシル(유그드라실)』까지의 시기를 돌아봤을 때 마스 씨에게는 어떤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하시나요?

升:『FLAME VEIN』とか『THE LIVING DEAD』の頃は「バンドをやっている」という感じだったのが、ちゃんと「ドラムを演奏する」っていうところに意識が向き始めた時期だったと思いますね。
마스: 『FLAME VEIN』이나 『THE LIVING DEAD』 무렵에는 “밴드를 하고 있다”는 느낌이었다면, 이때는 제대로 “드럼을 연주한다”는 쪽으로 의식이 향하기 시작한 시기였다고 생각해요.

おせえよって感じだとは思うんですけど(笑)。
너무 늦은 거 아니냐는 느낌이긴 하지만요(웃음).

少ない手札でやってたところから、曲が求めるものを表現するために、自分の担当する楽器にしっかり向き合うようになっていった。
적은 수의 패만 가지고 하던 데에서, 곡이 요구하는 것을 표현하기 위해 제가 담당하는 악기와 제대로 마주하게 됐어요.

単に上手いとか下手だとかというより、その曲がベストな状態で聴かれるにはどうすればいいかという。
단순히 잘한다거나 못한다거나의 문제가 아니라, 그 곡이 가장 좋은 상태로 들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가 하는 거죠.

そこで「こうしたいけどできない」っていう葛藤もどんどん増えていった時期だと思います。
그 과정에서 “이렇게 하고 싶은데 할 수 없다”는 갈등도 점점 늘어나던 시기였다고 생각해요.

――リスナーとしての升さんはどうでしたか?
――리스너로서의 마스 씨는 어땠나요?

どんな音楽を聴いてましたか?
어떤 음악을 듣고 있었나요?

升:Radioheadはよく聴いてましたね。
마스: Radiohead는 자주 들었어요.

Belle and Sebastianも好きでした。
Belle and Sebastian도 좋아했고요.

同時代の洋楽をすごく聴いてた気がしますね。
동시대의 서양 음악을 굉장히 많이 들었던 것 같아요.

それと同時に、U2とかThe Policeとかを後追いで聴くようになったり、それまで触れてこなかったものも聴くようになって。
그와 동시에 U2나 The Police 같은 음악을 뒤늦게 찾아 듣게 되기도 하고, 그때까지 접하지 않았던 것들도 듣게 됐어요.

それまで自分が聴いてたのは基本的に90年代のオルタナとかバンドものだったんですけど、アメリカ人の先生にドラムを習うようになって、80年代のSteely Danとか、スタジオミュージシャンが技巧を凝らして作り上げるような作品を聴くようにもなった。
그때까지 제가 듣던 음악은 기본적으로 90년대 얼터너티브나 밴드 음악이었는데, 미국인 선생님에게 드럼을 배우기 시작하면서 80년대의 Steely Dan이나 스튜디오 뮤지션들이 기교를 총동원해 만들어낸 작품들도 듣게 됐어요.

いろんな聴き方をするようになった時期ですね。
여러 방식으로 음악을 듣게 된 시기였어요.

遅いかもしれないけれども、プロになっていった
늦었을지도 모르지만, 프로가 되어갔다



――2006年の2月11日で結成10周年となったわけですが、そもそも、こういう風にバンドがアニバーサリーを祝うようになったきっかけは?
――2006년 2월 11일로 결성 10주년을 맞았는데, 애초에 이런 식으로 밴드가 기념일을 축하하게 된 계기는 무엇인가요?

升:この年に「run rabbit run」のツアーがあって。
마스: 이 해에 「run rabbit run」 투어가 있었어요.

その2月11日、福岡の1日目の時にアンコールで「BUMP OF CHICKENのテーマ」をやったんですよ。
그 2월 11일, 후쿠오카 첫날 앙코르에서 「BUMP OF CHICKENのテーマ」를 연주했어요.

その前のどこかで決めたんだと思います。
아마 그전에 어딘가에서 결정했던 것 같아요.

この頃、だんだん「デビュー何周年ですね」みたいに言われることが増えてきて。
이 무렵 점점 “데뷔 몇 주년이네요” 같은 말을 듣는 일이 늘어났어요.

でも、デビューって、あんまり自分たちではピンときてないんですよね。
하지만 ‘데뷔’라는 건 저희 스스로는 별로 와닿지 않았어요.

「ダイヤモンド」でメジャーデビューだけど、その前にアルバムを2枚出してるし。
「ダイヤモンド(다이아몬드)」로 메이저 데뷔를 했지만, 그전에 앨범을 두 장 냈고요.

じゃあ『FLAME VEIN』なのかっていうと、その前に500枚限定のCDを出しているし、そうするとリリース日なんてもうよくわからない。
그럼 『FLAME VEIN』이 데뷔냐고 하면 그전에도 500장 한정 CD를 냈으니, 그렇게 되면 발매일 같은 건 이제 잘 모르겠는 거죠.

バンドのスタート地点を自分たちから発信するなら、そこからさらに辿っていって、結成日がいいだろう、と。
밴드의 출발점을 저희가 직접 정해서 알린다면 거기서 더 거슬러 올라가 결성일이 좋겠다고 생각했어요.

で、結成日はこの4人で初めて外に向けて音を出した日がいいんじゃないかという。
그리고 결성일은 이 네 명이 처음으로 외부를 향해 소리를 낸 날이 좋지 않겠냐는 이야기가 됐고요.

それで2月11日になった感じです。
그래서 2월 11일이 된 느낌이에요.

――そこで升さんの記録がしっかり残っていたことが大きかったと思うんですが、改めて、それはどういう理由が大きかったんでしょうか?
――그 과정에서 마스 씨의 기록이 제대로 남아 있었던 점이 컸다고 생각하는데, 다시 생각해봤을 때 기록을 남겼던 가장 큰 이유는 무엇이었나요?

升:記録が好きなんです。
마스: 기록하는 걸 좋아해요.

もうそれとしか言いようがないです。
이제 그것 말고는 달리 표현할 방법이 없습니다.

その後の何かに役に立つとかは特に考えてないですし、コレクター気質みたいなものに近いと思います。
나중에 무언가에 도움이 될 거라는 생각은 딱히 하지 않았고, 수집가 기질 같은 것에 가깝다고 생각해요.

――では、最後に聞かせてください。
――그럼 마지막으로 여쭤보겠습니다.

1996年の結成から2006年までの10年間は、BUMP OF CHICKENにとって、ご自身にとって、どんな時間だったと思いますか?
1996년 결성부터 2006년까지의 10년은 BUMP OF CHICKEN에게, 그리고 본인에게 어떤 시간이었다고 생각하시나요?

升:やっぱり、ミュージシャンとしてしっかり音楽に向き合っていった時期だったと思います。
마스: 역시 뮤지션으로서 제대로 음악과 마주하게 된 시기였다고 생각해요.

遅いかもしれないけれども、プロになっていった。
늦었을지도 모르지만, 프로가 되어갔어요.

もちろん初期からチケットも手売りしてたんで、お金をもらっているという意味でのプロ意識はあったと思うんですけれど。
물론 초기부터 티켓도 직접 팔고 있었기 때문에 돈을 받고 있다는 의미에서의 프로 의식은 있었다고 생각하지만요.

それよりも楽曲に対しての意識が大きくなっていった。
그보다 곡 자체에 대한 의식이 점점 커져갔어요.

必要なものを最適な形で、最適な演奏で伝えたいという。
필요한 것을 가장 적절한 형태로, 가장 적절한 연주로 전달하고 싶다는 생각이요.

当たり前なんですけど、そういう風に楽曲に向き合うようになっていった時期だと思います。
당연한 이야기이긴 하지만, 그런 식으로 곡과 마주하게 되어간 시기였다고 생각합니다.


取材・文 / 柴那典
취재·글 / 시바 토모노리